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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YES or NO)
- 다른 나라 국적의, 생김새가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YES or NO)
- 전화번호를 교환할 수 있다. (YES or NO)
- 식사에 초대할 수 있다. (YES or NO)
- 함께 대화를 나누고 5시간 이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YES or NO)
원효사에서 우연히 만나, 무등산 코스를 아이스 브레이킹 주제 삼아 대화를 시작하게 된 15분 남짓의 시간. 인스타그램 주소도 주고받았던 터라, 아이들을 보내고 난 혼자 남은 오전, 난 낯선 나라 사람과의 우연한 교류를 무심코 떠올렸다.
프랑스 국적이라지만 콩고 출신이라는 사람.
왜 하필 광주까지, 이 더운 날씨에,
그리고 여자 혼자서 여행을 왔을까.
하지만 멀리서 온 발걸음이 궁금했고 광주에 오게 된 연유가 의아했으며 광주 어느 곳을 여행할는지 걱정되었다. 날이 더웠다. 익숙지 않은 도시에서 무탈히 잘 다닐 수 있을까. 내게, 그리고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광주는 애써 시간을 내어 찾아올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고 흥미로운 여행지는 아닌 듯했다.
굳이 미리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도 무서운 세상이기에 일단, SNS상에서 단편적으로 보이는 정보로라도 파악해야 했다.
어제 절에서 만난 외국인은
위험한 사람일까, 아닐까.
인스타그램 상의 정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남겨진 사진과 글의 느낌으로 봐 선 최소한 위험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오만에서 동양인인 나와 친구를 초대해 예멘 커피를 대접하고 집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주던 '고래의 집' 영국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우연히 만나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한 바퀴 구경시켜 주고 그릭 커피까지 딸려 보내던 요리사 청년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의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난, 집에 초대하고, 차에 태워주기에, 위험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을까. 낯선 이에게 경계보다 따뜻함을 서슴없이 보내던 이들에게 나는 잠깐의 망설임도 읽을 수 없었다. 낯섬은 두려움이 아닌 만남을 여는 또 다른 문이라고 믿는 듯했다.
적어도 나를 어딘가로 유인해 해를 끼치거나 무언가를 노리고 접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연락을 주고받자마자, 서로에게 익숙했던 사람들처럼 우린 발 빠르게 약속을 정하고 있었다.
심심해도, 특별할 것 없어도 그저 무난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 안심하며 살던 나. 하지만 그 평온함에 기대 살면서도 어딘가에서 이국적인 만남을 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낯섦은 이미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에 가려던 참이었어.
거기서 만날래?
83년도에 태어나 서울살이 몇 년, 외국살이 몇 년 했던 몇 해를 제외하고. 쭉 광주 시민으로 살아온 나에게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만나자고 먼저 제의해온 콩고 사람. 부끄러운 일이지만,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광주 시민이었다.
너,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가본 적 있어?
무등산 등반 어디까지 해봤어.
광주 시민이자 친구에게 물었다. 실은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무심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만 몰랐던 건 아니다.' 핑계를 대고 싶어서였다.
얼마 전 우린 무등산에 간답시고 길을 나섰다가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딱 증심사까지만 올랐다가 닭볶음탕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적어도 무등산 등반은 딱 나만큼이나 해봤겠지.
다행인지, 여전히 당황스러운 일인지 모를 일이지만, 스스로 '우린 지각 있는 사람들이야' 말해왔던 85년생 광주 친구조차도 모르마 했다. 무등산 '토끼등'이라는 지명도 내 입에서 처음 들어본 눈치였다. 40여 년을 넘게 광주에 살면서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한번 찾아갈 생각을 못했던 나에게, 프랑스에서 5·18 단어 하나 때문에 광주까지 찾아왔다던 외국인이 차분히,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었다.
광주 시민이지만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처음이지?
어서 와. 나는 프랑스에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