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학부모는 처음이라
아이들이 유치원 7세반에 다니던 어느날, 딸이 말했다. 7세 남자 아이 한 명이, 아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너 애, 소중이 봤어? 한번 그려봐)
아들은 소중이 비스무레한 것을 끄적여줬다고 했다. 남매로서의 의리도, 나쁜 행동을 분간할 줄 아는 사리분별력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그림 앞에 서있었던 딸이 느꼈을 수치심이 얼마큼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어른이 느꼈을 그것보다 '어린아이들이 뭘 안다고 그래...'치부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려나. 소중이 그림을 종용했다는 7세 아이네 집에 컴플레인하기도 멋쩍고, 입에 올리기도 남사스러웠다. 멋모르는 아이들의 해프닝 쯤으로 넘겼다. 그리고 우리집 7세들에게만 개별적으로 성교육을 진행했다.
1차 성교육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아들이 말했다. 또 그 남자아이 이야기였다. 같은 또래이지만 아이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을만큼 키가 큰 아이. 그 아이 입에서 또 우리 딸의 소중이가 거론되었다. 아들은 이번엔 하지말라고 했는데 또 해서 속상했다고 이야기했다. 성별이 다른 남매 중 남자아이에게, 성을 주제로 또 다시 이야기를 꺼내어드는 등치가 큰 반 친구에게 이번엔 "그런 이야기하지마! 정도로 이야기한 걸로 보였다. 유치원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당황스러워하시며 주의를 주겠노라 말씀하셨다. 유치원에서도 따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면목이 없다고.
얼마 전엔 독일에서 2018년생 동성 여자아이가 2019년 우리 조카를 소중이 문제로 괴롭히는 일이 생겼다. 반 친구 다른 한 명에게 망을 보게 하고 아이를 눕게 하는 등. 여러모로 디테일하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동을 저질렀단다. 한국 여자아이 두 명은 말이 통하지 않고, 키도 등치도 큰 아이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때마침 SNS에서도 아이의 핸드폰 안에 저장된 사진 몇 장이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이 클릭 몇 번이면 자유롭게 19금의 세계로 넘나들수 있을 인터넷 세상. 아이들은 우리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시각과 언어로, 그들만의 접근법으로 인터넷 세상을 넘나들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 시선을 사로잡을 컨텐츠의 종류와 범위의 무한함을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런게 우려스러워 내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핸드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또한 언제까지 유효할런지. 정보라는 이름을 가장해 봇물 터지듯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인터넷 파도를 등치고 서서 작은 구멍 하나 간신히 내 몸으로 막고 있는 기분이다. 진실만큼 왜곡도 많고 호기심만큼 자극도 많을 그 세계는 늘 아이들의 동공을 커지게 만들고 부모로 하여금 눈을 부라리게 한다. 비단 SNS에서가 아니더라도, 소중이를 궁금해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치고 꽤 수위높은 발언 및 행위까지 하는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막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킨 후 노파심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영어로 말을 해야할 것만 같아서...해야할 말을 안할 수는 없는거야. 그게 누구든
나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땐 팔을 꽉 물어버릴려는 기세로 달려들거나 저항해야해)
말했다. 이번 생에 엄마는 처음인지라, 당황하고 속상한 마음에 궁리해서 내뱉은 말이 겨우 저거였다.
(엄마, 그러면 이빨 자국이 나더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친구를 깨물어버려도 된다는거야?!)
딸이 되물었다. 학교에서 끊임없이 '학폭'이라는 단어가 거론되는 상황인지라 의아한 모양이었다.
딱히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줘야할까.
그날 밤, 난데없이 고등학교 1학년때 엄마가 데리고 갔던 합기도장 생각이 났다. 도장 옆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엄마는, 도장 옆 초등학교 옆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에게 대뜸 함께 합기도를 배우자고 말했었다. 요즘의 교육열로 봐선,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에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는 딸에게 난데없이 왠 합기도야?! 할 법한데...사실 그때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얼떨결에 엄마와 합기도장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의 몸으로도 온전히 나비 자세가 되지 않고 다리 찢기가 안되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내 기합은 늘 자신이 없었고 동작도 쭈뼛쭈뼛, 여고생의 수줍음을 벗어내지 못했다. 반면 30대 후반의 엄마는 10대 중고등학생들만 북적거렸던 수업 시간에, 그 혈기왕성함에 아랑곳 하지 않는 아줌마 배짱으로 기세가 등등한 모습이었다. 몸은 여지없이 딸 셋 낳은 30대 후반 여성의 뻣뻣함을 말해주었지만 기합소리만큼은 누구보다 우렁찼다. 엄마의 기합소리에 내 목소리는 개미소리만큼 희미해져갔다.
난데없이 왜 나를 합기도장으로 데리고 갔나는 질문에, 엄마는 딸이 자기 몸 하나쯤 지킬수 있었으면 해서 그랬다고 말했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밀려드는 파도로부터 딸을 그렇게 지키게 하고 싶었나보다. 그 마음이 30대 후반, 엄마에게도 쉽지 않았을 합기도장 문을 넘게 만들었나보다. 몸은 굳었지만 마음은 유연했던 그 시절의 엄마의 시도는 용기이자, 딸에게 건넨 동행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40대 중반의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주짓수였다. 간단한 요가 동작을 하면서도 바들바들 떨면서 내 어깨 하나 마음대로 펴내지 못해 '거북목','라운드 숄더','전방경사' 등 온갖 이유들을 갖다대는 사람이 겨우 생각해낸 방책이 주짓수라니. 하지만 소중이 이슈를 넘어서 학폭 문제까지, 너무나도 험난한 세상이 아니던가. 이번 생에 학부모는 처음인데, 왜 이렇게도 고민해야할 건 방대하고 많은거야, 입을 삐쭉거리며 노트에 썼던 주짓수라는 단어 위에 거칠게 가위표를 쳐보았다. 나와 엄마의 성향으로 봤을때 나는 주짓수 도장에 아이 다섯 데리고 나설 수 있을 배짱의 사람이건만. 몸은 굳었지만 마음만은 유연한 채로 우렁차게 기합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다섯 아이들이 나설 일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