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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21. 2021

엄마의 빈자리

친정엄마, 늘 Minor가 돼주는 사람

엄마가 없는 친정집에 한동안 가지 않다가 오랜만에 갔다. 집만 치웠다. 시집간 딸이 친정집을 치운다는 것에 대해 '이제 (당신의) ‘집’이 아니지 않소.' 되묻는 구닥다리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아직도 주변엔 ‘출가외인 ’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나의 집이다. 이제_현재보다 과거의 자취가 더 묻어나긴 하지만.  결혼한 세 딸들의 과거며, 현재가 고스란히 담겨있던 집은 그야말로 맥시멀리즘 발현 중이었다. 여태 무언가를 덜어낸 적이 없었다.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를 대신해 내가, ‘버림’을 자청하기로 했다. (나처럼 버리고 깔맞춤 하는 걸 좋아하는 또 다른 엄마 딸과 함께)

(요샌 살림에도 미니멀리즘이 대세야, 엄마.)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 엄마의 살림을 들여다보니 그녀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싶다. 산과 들을, 작은 꽃과 풀들을 좋아하는 사람. 살림에서조차 본인의 취향보다는 가족을 위함이 곳곳에 보이는 사람. 온갖 재활용병이란 병은 다 동원하여 혼자 지구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 요즘 새댁들의 깔끔한 살림법엔 웃음만 나올 베테랑 주부의 초라한 살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못난 사람.





엄마의 오랜 살림살이들을 버렸다. ‘엄마도, 참... 엄마는, 참... 못났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유행 지난 ‘새 그릇’들도 모조리 그냥 버렸다. 아낀답시고 깊숙한 곳에 고이 쟁여놓고선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증 贈이라는 금박 글자가 지워졌다. 어디선가 선물로 받은 그릇 세트였던 모양이다, 세월만큼이나 먼지도 수북이 쌓여버린 새 그릇 아닌 새 그릇들. 레트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묵은 고대 유물과 같았던 살림, 딸들에겐 새 그릇 세트를 척척 사주면서 그리도 행복해하더니만. 그릇 말고도 쯧쯧, 이 절로 나오던 현장이었다. 엄마를 대신하여 묵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 넣을 것은 채워 넣었다. 수납함들도 통일해서 구입해보기 좋게 정리했다. 또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고 한 소리 하겠지. 정리를 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면 엄마가 돌아올까?) 


말이 새어나왔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어렸을 때나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이나 더 익숙한 모양인지. 엄마의 해방과 자유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30대 후반의 사람. 엄마의 빈자리가 그리우면서도 내 육아의 짐을 덜어줄 엄마 손도 아쉬운 사람.






<언젠가부터 나는 망설이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무조건 선택하고 나서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왠지 그것이 살면서 뭔가 밀고 나가는 기분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뭘 먹어야 할지 특별한 것을 먹어야 할지를 망설여야 하는 시점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박력 있게 정하는 일을 먼저 했다결과는 나쁘지 않았다뭐든 일단 저지르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해서 안 좋은 결과만 따라오는 건 아니니까.>

이건 내가 ‘엄마의 떠남’에 대해 쿨한 척한답시고 보여줬던 책의 한 구절이었다. 역시 난 ‘쿨한 척’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내 속내를 흘려보낸 걸 보니. 하지만 내 감정 따윈 상관없었다.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취향으로 한껏 채웠으면 좋겠다 했다.  ‘의무’란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로워지길. 엄마의 해묵은 감정들, 상처 받았던 마음들은 이제 털어내길. 참는 쪽과 착한 쪽은 이제 선택하지 말길. 엄마의 감정에도 미니멀리즘이 깃들길. 그것이 뭐든. 응원해주는 마음이다. 하지만 어느 때라도 엄마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집이 안온하게 엄마의 집이길 바랐다. 말없이 집을 치웠다.     



   



엄마가 집을 떠나 있게 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아이들은 많이 자랐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재울 때마다 늘 노래를 부른다. 잠자리에 누워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매번 옛날의 것이다. 엄마가 기찻길 옆을 거닐 때마다 불러주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같은 노래들. 요즘 나온 트렌디한 동요들도 많은데...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젖먹이 동생을 둘러업고 한 손엔 다른 동생의 손을 이끌고 걷던 엄마가 보였다. 그 뒤를 따라 걷다가 엎어달라고 찡얼거리던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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