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말에, 친구란 이름의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아이 둘 사이, 육아 전쟁터 속에서 한껏 스산해진 마음에 주절거려보던 경력단절녀, 육아맘의 넋두리였을 뿐이었는데 "넌 결혼 전에도, 네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지 않니?" 넋두리에 대한 대답치 곤 꽤 뼈 아픈 공격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했어야 했을까.
대답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일이란 것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 지 나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난 그 한 마디에 오랫동안 아팠다. 아픈 말들은 유독 귓 가에 맴돌고 머릿속에 자주 스치운다. 털어내버려야 할 말들은 유독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든다.
내가 그동안 흩뿌려놓았던 숱한 노력의 점들을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형편없는 별점으로. 그 점들을 잇고 이어, 간신히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누군가, 짓밟아버리고 간 기분이었다. 그 그림이 작품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 연습삼아 그리던 도화지를 멋대로 찢어버린 기분. 넌 이제껏 형편없는 그림을 그려왔잖니. 혹평하며.
유독 추운 겨울날 꽃망울을 빼꼼히 터트리며 황량함 가운데, 홀로 빛나는 꽃나무. 한 해의 끝자락에, 늦게 피지만 애기동백은 동백에 견줘 더 붉고 봉오리가 활짝 열린다. 사람에 따라서 꽃 피우는 시기가 다른 것을 추운 날에 홀연히 피어 더 찬란할 수도 있는 그런 꽃일 수 있는 것을. 네 인생에서, 아직_꽃 피운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니 묻던 너에게 이제야 대답한다. 애기동백이 늦게 피는 꽃이 될 수도, 봄을 재촉하며 일찍 피는 꽃일 수도 있지 않겠니. 꽃을 피우지 않아도 괜찮다. 모두 저마다의 싹을, 잎을, 꽃을 터트리는 때가 올 테니. 하지만 아마 난 이 말을 전하지 못할 듯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주는 감정 소모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할 필요는 없으므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런 인간관계는 가지치기가 답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