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시네마
"샤르자 지리를 잘은 모르는데, 옆 좌석에 와서 길 좀 알려줄래?"
나 역시 두바이나, 샤르자의 지리를 잘 알 턱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초행길 티를 내고 싶지 않아 그러마 했다. 조수석에 앉았다. 택시기사는 튀니지에서 왔다고 했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인지,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외국인과 영어 프리토킹하는 마음으로 질문들에 살뜰히 응했다. 당시 아랍 사람들, 특히 두바이의 여자들은 한국 아이돌이나 배우들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아이돌 안무까지 다 외울 정도였고 두바이 시내 한복판에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부르즈 칼리파 빌딩을 세운 삼성으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한국에 대해 묻는 질문들엔, 외교사절단 대표라도 되는 양 조근조근 대답해줬다. 하지만 두바이 공항에서 샤르자의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초반에의 대화는 점점 잦아들었다. 택시 안에 침묵이 감돌 무렵, 점점 시내를 벗어나 인적 드문 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떨어져 밖은 깜깜해졌다.
그런데 옆 좌석에서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황량하게,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전봇대들만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진 않고 곁눈질로 힐끗거려봤다. 택시 기사 녀석의 조물락조물락 마스터베이션 현장을 감지할 수 있었다. 'Oh my goooooood.' 기껏해야 프라이드 정도 될 사이즈의 비좁은 택시 안에 있는 건, 튀니지안 택시기사와 나뿐이었다.
(그런데 저 나쁜 손은 대체 어디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 신이시여. 인샬라.)
불경스러운 순간에, 엄마라는 단어는 담기도 싫었는지 OMG가 새어 나왔다. 연신 하악하악 숨소리 들렸다. 언제든 클라이맥스가 나올지도 모르는 그런 순간. "그런데... 튀니지에 가족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여전히 효과음은 나른하게 계속되었다. "응. 튀니지엔 우리 아들만 있어. 와이프랑은 이혼했고." "그럼 아들은 누가 키워? 아들 보고 싶겠다~"
(고향땅은 떠나왔을지언정 부모임을 잊지 마. 나도 우리 엄마 소중한 딸이야..... 이 새끼야.)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중 모드였다. 잦아들 기새 없이 집중력이 좋았다. 자동차 속도계의 km가 올라가는 동안, 조물조물하던 그의 손놀림에도 점점 속도감이 붙었다. 나는 거의 조수석 창문에 들러붙을 기세가 되었다. 등이 흥건히 젖었다. 불안하던 내 시선은, 조수석 쪽 문고리와 여전히 캄캄한 창 밖, 그리고 속도계 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문득 택시기사의 유난히 희번덕한 눈동자와 맞닥뜨렸다. 외마디 소리가 나올 뻔했다. 잠시 생각했다.
(이 놈이 갑자기 사막에 차를 세우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쩌지.)
불현듯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부다비의 영국인 기장 집에서 일하던 필리피노 메이드 하나가 장 보러 갔다 온 사이 사막으로 납치되었다고 했었다. 로컬 아랍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가까스로 풀려났다고 했다. 정의감에 불타던 기장이 소송을 걸었지만 오히려 필리피노 메이드만 태형을 맞고 추방당했다는 이야기.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였다. 나의 걱정 어린 상상은 극에 달했다. 속도 170km로 달리는 차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면... 영화에서처럼 난 낙법으로 뒹구르르 구르다가 무사히 착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충격 강도가 심할 테지.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걸까. 유난히 사막의 길은 무섭도록 길었다. 10분 같은 1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