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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ul 20. 2021

쓰기라도 해야 하는 밤

열무 비빔국수

글 쓰는 사람, 그중에서도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다. 이왕이면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한 문장이라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꽤나 구체적인 욕심을 내보기도 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문장 필사 같은 거.'


그런데도 글이란 건, 왜 늘 맑은 날보다 침침한 날에 더 써지는 건지. 잘 쓰고 싶다고 욕심내는 글에게 매번 미안해진다.


-미안. 이러려고 한건 아닌데, 늘 무겁지...'

아쉬울 때만 찾는 끄적거리는 글이다.







결혼이란 건 이토록 지난至難한 것이었을까.


7년이 지나 5년 동안 부모라는 이름을 함께 달고

걸어왔는데도 이 밤에조차 쉽지가 않다.

2,272일째 되는 밤을 맞이한 이 날에조차도.


아이들을 매일 즐겁게는 해주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꼭 이것만은

피하게 해 주어야지_싶었던 게 있었는데

오늘 야속하게도, 뚝 떨어지는 새똥을 피하지 못했다.


겪지 않게 해 주려던 그 일을, 나 조차도 피하지 못한 밤.


리와인드 버튼을 눌러, 되돌리기라도 할 수 있다면

내 기억 속에서도, 내 아이들의 생각 속에서도

삭제하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었다.







여태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5년 묵은 엄마라도,

엄마는 엄마인 모양인 지

잠깐의 찰나 동안에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일일 런지 부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엄마처럼, 옆집의 몇몇 다른 여자들처럼

나 역시 그냥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호흡 몇 번에

지금 이 순간, 상황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엄마는 억울해도 안되는 거였다.

엄마는 스스로의 감정을 내세워도 안되는 거였다.


세월이 흘러도, 딱히 새삼스럽지 않은 건

왁자지껄 단란한 가운데서도

이 정도의 소란스러움은 여느 집에서나

'으레' '응당' 있을법한

일들 중 하나_이기 때문인 걸까.


마음 같아선 어떻게라도 격함을 표현하고픔이었지만

막상 상황이 극에 치닫고 보니

오히려 또렷해짐을 느꼈다.


마음은 환장할 일이었지만

딱히 풀어낼 데도 없어

몇 줄의 글로, 찬물을 끼얹어본다.


바글바글 익어가는 소리를 내며

하얀 거품 속에 끓어오르는

국수 면발에, 찬물 한 그릇이면

오히려 쫄깃쫄깃해지는 법이라.


쫄깃해지는 과정 속에 있는 거라고, 다독거리며 말이다.


시원한 오이를 채 썰어 넣고

물김치 속의 열무들을 몇 넣고

쫑쫑 썰은 청양고추에, 매콤한 양념장에,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까지 떨어트려

유난히도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위로하는 밤이다.


땀 한번 흘리고, 콧물 한 번 닦고

에라이, 재수 없었다_

남은 휴지로 새똥마저 닦는 밤.


기분은 잠시 더러워도, 이 밤도

우야무야 흘러가겠지.


이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아이들에게 밤에의 쌉싸름한 기억의 조각들을

싹 지워낼 과하게 달달한 것들을 마구마구 줘야지.


감정만큼이나 격하게 국수를 후루룩거렸더니

다만 몇 젓가락에 끝나고 말았다.

깨 몇 톨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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