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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Nov 23. 2020

그만 왕관을 내려놓아도 괜찮아

거베라 Gerbera

수십 년 동안 우리들의 집에 있던 엄마가
어느 날 어렵사리 선언을 하였다.

엄마의 홈그라운드를 잠시 떠나,
이제 가족을 위해서 사는 엄마가 아닌
엄마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 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그와 같은 선언엔
자의든, 타의든
‘사정’이란 게 급작스럽게 작용하긴 하였지만

딸들을 결혼시키고,
손주들을 맞이하였으며,
이제 오랜 교직생활마저 스스로 끝맺음한
엄마에게_’자유’와 ‘오롯이 즐김’이란
어쩌면 당연한 단어일 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난, 집을 비우겠다는
엄마의 말에_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온전히 박수쳐주지 못했다.

마치 엄마의 할 일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처럼.

엄마는 여전히
엄마의 자리에_


아빠를 위해,
우리를 위해,
손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양.

거베라를 꼽던 어느 날,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거베라는 꽃다발, 꽃바구니 뿐만 아니라 화훼장식기능사에서도 늘 메인 꽃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중심에 서서, 늘 꼿꼿하게 쨍한 색감을 드러내는 꽃.


그런데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꽃 주변으로 플라스틱 캡을 무겁게 두르고 줄기 안엔 철심까지 박혀 나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제거할 잎은 없이

그저, 물만 깨끗하게 갈아주면 되오_수더분하게 이야기하는 듯했던 컨디셔닝 하기에 무난한 꽃.

 

정작 본인은 고됨 속에서도, 무난함을 이야기하면서

 늘 중심 꽃으로서 큰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게

마치 나의 엄마 같았다.


주인공 꽃이라_ 곧지 않아도, 꽃 표정이 밝지 않아도

금방 티가 나는터라 항상 매무새에 신경 써야 했던 사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쉴 날 없나니.’ 


자처해서 쓰려는 왕관도 아니었는데, 화려한 색감과 꼿꼿한 자태에 자의든, 타의든 중심이 되어야 했던 사람.


엄만, 오랫동안

늘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았던,
철저히 ‘가족’이 삶의 원동력이자
의미였던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선

뭐 하나 버릴 줄 모르면서
정작 자기를 위해선
뭐 하나 들이지도 못했던 사람.

늘 '엄마는 괜찮아.' 말하곤 했던 못난 사람.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한,
묵은 살림살이만큼이나
아픈 감정들도
켜켜이 안고 살았던, 사람.

그런데도

우리 집에서만이라도 '메인 꽃'임을

내려놓고 싶었다 말했을 때_


이제는 철심도 걷어내고 플라스틱 캡도 벗어던지고 '엄마의 이야기'들로

엄마만의 자연스러움으로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고 싶다 말했을 때_


왜 나는 여전히 중심에 서서

꼿꼿하게만 있어달라고

엄마의 자리를 지켜달라고만 말했을까.


새삼 엄마의 바람을

내 이기심으로, 묵살해버린 채

영원히 우리 집의 거베라로 남아주오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했다.


이제 엄마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의무’란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으며

거베라를 내려놓았다.


그만, 왕관을 내려놓아도 괜찮아.







#거베라




독일 식물학자인 게르버(Traugott Gerber 1710∼1743)를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졌다는 게르베라(Gerbera)는 빨강, 노랑... 색감이 화려해

화환, 꽃바구니, 꽃다발 등에

활용도가 높은 '주인공 꽃'이다.


원산지는 온대, 열대 아시아, 아프리카.

꽃말은 신비, 수수께끼.


거베라는 꽃목이 쉽게 부러지는 수곡 현상이 있어,

꽃을 자른 후 플라스틱 꽃 캡을 두르고,

줄기엔 철사심이 넣어 꽃목을

고정시킨 채로 유통된다.




#일상

#일상기록

#친정엄마

#엄마의이름으로

#육아일기

#육아하면서엄마를생각하는시간이많아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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