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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22. 2021

육아 앞에 drama queen

내가 아는 필리핀 엄마들, 민도르 사방비치

한 번도, 쉽게 다다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돌아가는 길에 대해, 좀 둔감한 편이다. 느리게 걷는 와중에도, 늘 배우는 건 있다며 다독거릴 때가 많았다.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꽃 알바를 던 20대의 어느 엔,  꽃도 배우고 돈도 벌고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으니 좋다 했다. 결혼식 때마다 필요한 웨딩 꽃장식을 도왔는데 늘 서울대 출신, 저명한 분의 주례 말씀을 꽃들 너머로 들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통번역 일을 할 땐, 늘 좋은 환경에서, 흔치 않은 경험을 하는구나 감사히 여기마_했었다. 누군가의 말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오차 없이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그마저도 비정규직임을 서글퍼하면서도 말이다. 난임으로 어렵게 아이를 갖게 되었던 3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준비 없이 아이를 덜컥 임신했다가 무책임하게, 아이의 인생을 쉬이 져버리기도 하는 나쁜 사람들보단 더 많은 준비를 해온 엄마라 다독거렸다.





늘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시키고 끊임없이 부산스레 구는 편이다. 남들보다 걸음이 더디니, 더 부지런을 떠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푹 꺼질 때가 있다. 마음 쓰는 것만큼 결과가 뒤따르지 않을 때 몰려드는 속상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꾸역꾸역 마음을 꽤 잘 다 잡아왔다 생각했는데... 습관적으로 괜찮은 척하는 게 가끔 버겁다.     


육아 일상 중, 내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표출하게 되는 대상이 빈번하게 내 아이들이 된다는 사실에 시시때때로 속이 시끄러웠다. 우는 아이를 마주하고 깨어있는 새벽. 내 잠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육아는 다정하지 않았다. 화장실 안에서조차 보장되지 않는 내 프라이빗한 시간 앞에 감정은 격해졌다. ‘당신은 그래도 집에서 쉬지 않느냐’ 말하는 무심한 말 앞에 분노가 일렁거렸다. 아이와도, 남편과도 서로 평행선을 걸을 때가 빈번했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토스하고, 남편에게 느꼈던 서운함은 아이들에게 투하하는 때가 늘어났다.







그러던 와중, 전화영어를 하다, 목소리 톤이 '시'톤 즈음되는 듯했던 필리핀 영어강사에게 물었다.


(넌 항상 이렇게 상큼 발랄한 거니?)


수업을 할 땐 특히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통상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기분이 안 좋거나 피곤할 때도 지금의

목소리 톤이 유지가 된다고?)     

그녀는 늘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와 하는 모든 대화에 '신나 죽겠다'는 듯 반응하는 그녀의 활발함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던 말이다. 물론 그녀에겐 ‘일’이라 그랬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느 전화영어 강사들과도 달랐다. 늘 밝은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유창하지 않은 더듬더듬 영어 앞에서도, 썩 흥미진진하지 않을 한국 육아맘의 투덜거림 앞에서도.      


늘 '레'톤 정도의 목소리톤으로 지내다 아이들을 혼낼 때나 앙칼진 '솔'톤으로 응하는 내게 필리피노 영어강사의 태도와 답변은 좀 충격적이었다.









필리핀 민도르 섬로 다이빙 여행을 떠났을 때 생각이 났다. 민도르 섬은 필리핀에서 7번째로 큰 섬이라는데 먼저 바탕가스 항구로 이동해야 했다. 마닐라 시내에서 루손 섬 최남단에 있는 바탕가스 항구까지 버스로 90분 남짓 달렸다. 항구에서 다시 방카 보트로 1시간 정도 들어가기. 민도르, 그중에서도 사방비치는 다이빙 스팟으로 유명했다. 해가 뜨면 오픈워터 다이빙 자격증반 수업을 들었다.  바다로 나갔다. 해가 떨어지면 동네 클럽에 갔다. 클럽이라고 하기엔 필리핀 작은 바닷가 마을의  정도였다. 하지만 밤마다 바 테이블 너머, 가운데 무대에선 화려한 쇼가 벌어졌다. 스트립 쇼까지는 아니었지만 댄서들은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췄다.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그들을 둘러싸고 각국,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동성 친구들끼리 배낭여행 온 듯한 한국의 20대들, 골프 마실 나온 듯한 한국의 40-50대들, 필리핀 한가로운 어촌 마을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나 싶은, 60대 유러피안 남성들. 모두들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저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관람 자세로 일에, 가정에, 육아에 몰두하면 좋을 텐데... 온 가정에 평화로움이 깃들 텐데... 바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면서 사심 없이 신나 하던 손님은 아마 나와 친구 정도였을 테다.




 




춤을 추다 무대 아래로 내려온 댄서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앳된 얼굴과는 달리 두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하던 그녀.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온 두 아이를 걱정하는 미혼모였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엄마라는 이름은 지우고 철저히 프로페셔널하게 임하는 무대 위의 그녀는 멋져 보였다. 무대에 올라가면 어느 누구보다 화려한 몸짓으로 날개를 편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고된 일이 끝나고 나면 그녀도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진한 화장을 지우고,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는 엄마로.      


나는 어느 무대에서나 빈번히 내 감정을 드러낸다. 육아 앞에 행복감도 그렇지만 이면의 다른 감정들엔 더 폭발적이다. 육아 일상 중 사사롭게 흘러가는 모든 것들 감정적으로 대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다. 머리끈 하나로 보채는 아이 앞에서. 아이들이 먹다 흘린 부스러기들 앞에서. 별 의미 없이 스쳐가는 모든 언급들을 핀잔이라고 받아들이는 예민함이란... Drama queen이었다. 작은 문제로 호들갑을 떨고 과장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 연애 정석론자인 Alex는 말한다.  “여자들은 왜 그래요? 마음속에서 작은 것들을 확대시키고 혼자 특별한 의미로 바꿔요?!” 사랑 앞에서 특히나 감정적인 여자들, 그 의미 부여와 격한 반응들에 대해 Alex가 날린 말이었는데. 사랑 앞에 지지의 감정적 동요와 육아 앞에 내 격한 반응은 결국 한 끗 차이였다. 욕구불만은 끝이 없었고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난 너처럼 프로페셔널한 엄마가 아닌 거구나)


감정적인 엄마 말고, 프로페셔널한 엄마. 어떤 게 프로페셔널한 엄마인 걸까. 어떤 돌발 이슈에도, 어떤 마음 상태에서도, 어떤 갈등 상황 중에서도, 늘 한결같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엄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Bree 같은 엄마여야 하는 걸까.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것보단 낫겠지 싶다가도

육아 앞에 자주 두서가 없는 초보 엄마임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매일 담백한 육아를 꿈꾼다. 내 인생 첫 육아라지만 하루하루 좀 더 발전하는 엄마가 되길 바라면서. 감정적이고 못난 엄마를 다독거려준다.

옛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맥주 한 잔 해. 사방비치의 석양 사진을 더듬어보며 한 잔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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