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친척집 더부살이에서 벗어나 홈스테이를 결심했을 때 내 인생 통틀어 가장 깔끔했던 사람을 만났다. 캐네디언으로부터의 리얼 영어를, 캐나다 가족 문화를 접해보겠노라 열정이 샘솟았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선 순간, 내게 일러졌던 집안의 첫 번째 룰은 모든 물건은, 감추어라_였다. (캐나다 문화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나누는 게 아니었나요)
굳이 말로 모든 걸 설명하진 않았지만 숨겨라, 감추어라, 그리고 넘지 말아라_가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홈스테이 학생이라는 명목으로 당당히 월세를 내고 들어가게 되었건만 상상 외로 많은 룰들이 주어진 셈이다. 보석 디자이너였다던 할아버지의 그림 같은 집은, 그저 원래 있던 그대로 모델하우스처럼 보존토록 하는 게 암묵적인, 그리고 공식적인 규칙이었다. 내 방 한 칸의 속사정은 어찌 될 망정이든.
샤워가 끝날 때마다 온갖 샤워 제품들은 물기를 닦아 서랍장에 바로 넣을 것. 설거지 후, 개수대엔 물기 자국이 남지 않도록 할 것. 물론 욕실 사용 후에도, 욕조 안 물기를 남김없이 제거할 것. 모든 물건은 원래 있던 제자리에 놓을 것. 귀가 시간은 9시를 넘기지 않도록 할 것. 친구를 초대하지 말 것. 최대한 흔적 남김없이, 내 방 안에서만 맴돌면 될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당히 금액을 지불하고 들어간 홈스테이 살림, 나도 엄연한 고객인데 굳이 할아버지의 규칙 안에서 빠듯하게 움직이려 노력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하지만 착실하게 준수했다. 홈스테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홈스테이 시어머님 느낌으로. 그런데도, 그에게 나는 눈엣가시 같은 한국인 여학생이었을 테다. 물기 자국을 없애라는 주의는 줬지만 일주일에 한 번,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때를 밀어가며 야무지게 목욕을 할 줄은 몰랐겠지. 개수대 안 물기 제거에 대해서도 단디 설명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빈번하게 한국음식을 요리해서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다.
물기는 야무지게 제거했지만
한국 요리가 보글보글 내어진 자리엔
늘 냄새가 남았다.
음식 냄새가 싫어, 매번 다이어트 식품 같은 음식만 간소하게 먹곤 했던 할아버지에게 굳이 한국식 밑반찬들을 요리해서 먹는 이 여자아이란. 어찌 됐건 나는 나대로 할아버지의 결벽증에 늘 예민해있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말 못 할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만큼 '꼭꼭 숨겨라'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결벽증이 있는 남자와 살림에 두서가 없는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다. 한 공간에서, 여러 물건들과 함께 공존함이 크게 불편하지 않는 여자. 굳이 미니멀리즘을 실현할 필요가 있나, 더불어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여자와 시시때때로 불필요한 물건은 정리해야 한다는 남자,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물건에 화가 나는 남자, 때와 장소가 항상 정확해야 하는 남자가 한 집에 살게 된 것이다. 누구든, 내가 아닌 사람과 공간을, 경험을 나누는 일엔 늘 조율과 적응이 필요하다.
결혼을 시작한 이래로 중간에서 꾹 눌러 짠 흔적이 있는 치약과 결대로 정리하지 않은 드라이 선, 욕실 사용 후 닦지 않은 욕실 거울은 늘 소소한 투닥거리가 되었고 육아가 시작된 이후로는 목욕 후 오일을 바른 아이가 손으로 만진 문고리, 아이와의 촉감놀이 후, 여기저기 튄 밀가루 반죽들을 포함해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싸움의 소재가 되었다. 어지러움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과 깔끔함을 아직 포기하지 못한 사람의 동거란 어느 누구에게, 더 불편할 일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