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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19. 2021

좋은 사람이 그리운 밤에

두바이, mahesh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것. 내겐, 탄력 없는 피부보다 친구였다. 직장에 들어가면서, 사회초년생과 취준생의 갈림길에서 몇 헤어졌다. 결혼을 하면서, 청첩장을 주기 애매한 아는 사람 몇과 청첩장을 줬어도 안 온 친구 몇과 손절했다. 난임의 길에 접어들면서 나의 예민함이 친구 몇을 떠나보냈다. 그 이후의 관계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좋았을 때의 관계란 인연이 되지만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내보였던 상처가 흠이 되었다. 더 이상 뜨겁게 얽히지 않았다.     


두바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 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사막 위 신기루 같은 도시였다. 빈부격차의 그늘이 두바이에도 있었지만 사막 위의 코스모폴리탄은 밤이 되면 더 빛났다. 화려한 색채가 감돌았고활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물 만난 고기처럼 여러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역시 깊지는 않았지만 허울 좋은 그런 관계. 한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지, 내가 사는 아파트가 LH 아파트인지, 아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계기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두바이의 한 호텔에 식사하러 할랑할랑 나섰던 밤마실길이었다. 식사 전에, 테이블 위에 투명 교정기를 입에서 빼어 얹어놓았다. 플라스틱 교정기 케이스 대신 냅킨에 둘둘 말아, 그 흉한 모습만 가려놓은 것이다. 평소 준비성 없는 성격 탓이었다. 한참 식사를 하다 보니, 투명 교정기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내겐 교정기였지만 호텔 직원에겐 치워야 할 화장지 더미였던 것. 내 잘못이었다. 식사에 방해될만한 것들은 시시때때로 치워줬던 직원의 배려가 화근이었다. 며칠만 끼고 있지 않아도 모양에 변형이 왔던 탓에 투명교정기는 식사 때 외엔 내 입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던 것이었는데. 큰일이 났다. 호텔 식당의 휴지통을 모두 뒤졌지만 교정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교정기를 찾아 휴지통을 뒤지던 사건으로, 그 호텔 매니저와 난 친구가 되었다. 결국 찾지 못했지만 찾아도 애매할 노릇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교정기는 포기했지만 그 후로 난 그 업장에서 vip날개를 달았다. 


토요일마다 드런치 Drunch라는 이름으로 드링크와 뷔페 런치가 있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슬람 사원에서의 예배가 끝난 후 보통 13시에서 16시까지 열렸던 오후의 파티. 빈번하게 드런치의 호스트가 되었다.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이 펼쳐진 가운데, 시시때때로 와인잔을 높이 들었다. 분위기는 매번 뜨거웠다.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을 흥얼거리거나 간혹 모두가 아는 노래가 나올 때면 잔을 높이 들고 떼창을 하였다. 테이블 사이로 춤을 추며 흥겨워했다. 주말이면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그 핫플레이스에 마음 내킬 때마다 드나드는 파티걸이 된 셈이었다. 그때마다 먼발치에서 호텔 매니저인 mahesh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mahesh가 이른 저녁 식사자리에 날 또 초대했다. 이번엔 집으로의 초대였다. 10번은 갔을 그의 드런치 파티면서 1번의 집 초대를 응하지 않는 것도 큰 실례라고 생각되어 순순히 응하였다. 스위스 호텔학교 출신의 그는, 깔끔한 정장이 잘 어울리는 훈남이었다. 세심한 배려가 몸에 서려있었다. 평소에의 젠틀함과 깔끔함답게, 그의 집은 정갈하게 안온했다. 과하지 않은 소품들로 간결한 포인트가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잘 정돈된 화이트톤의 집. 먼지 한 톨, 흔한 생활용품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장식품 빼고 모든 게 들어가 있는 그런 집이랄까. 모든 게 집주인의 잘 짜인 로드맵 속에 있는 그런 곳. 모든 게 바깥에 나와져 있고 동선을 짐작케 하는 내 숙소의 방 한 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비밀스러우면서도 투명해 보였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속에, 테이블엔 양고기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세팅되어있었다. 습관화된 매너로 그는 의자의 끝자락을 빼주었고 나는 다소곳하게 앉았다. 그날 밤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대접받고 있었다. 내 먹는 속도에 맞춰 그는 적당한 크기로 양고기를 잘라주었고 와인잔에 좋은 와인들을 따라주었다. 스푼 위엔 딱 한 입 크기 파스타를 돌돌 말아 얹어주었다. 나는 그 파스타 면 둥지를 후루룩 거리기면 될 일이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1 맞춤형 에스코트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이며, 학교 다닐 때 이야기며, 두서없이 흐르던 이야기 속에서도 마냥 즐거웠다. 막상 mahesh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mahesh는 갖춰진 듯하면서도 수더분하고 유쾌했다. 기분에 취해 와인 한 병이, 두 번째 병이 되어가던 찰나를 맞이했다.  (이제 술은 그만 마셔야겠다) 하지만 이미 그는 와인 냉장고로 향하고 있었다. 또 다른 와인 한 병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그리고 그는 잠시 밖에 다녀오마 했다. 특유의 정리벽이 발동된 탓이었다. 다 먹은 음식들은 밖에 바로 버려야 한다고 했다. 바깥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때마침 교회 남사친에게서 전화에 왔다. (나 호텔 친구 집 초대받아서 왔다가 와인을 좀 많이 마셨어!)라고 말했다. 그저 해맑았다.







(야, 미쳤어?! 걔 남자라고 하지 않았어? 거기가 어디라고 가서 술을 마셔!!! 당장 나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기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다급함이 느껴져서였을까. 은근하게 올라오던 취기가 갑작스럽게 달아오르는 듯 후끈거려였을까. 영문을 알 턱이 없이, mahesh가 들어오던 그 문으로 나는 재빠르게 집을 나섰다.      


(Mahesh, I will talk to you later!!!)      


외마디 소리만을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쳐나갔다. (야, 저녁 식사 초대를 믿어? 걔는 그냥 너 밥 먹이고 술 먹이고 나서 너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거야!!!)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남사친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택시 내리는 순간까지 잔소리를 들었다. 그 남사친의 말에 의하면, mahesh는 검은 속내의 한 마리였다.      

(라면 먹고 갈래) 은수가 상우에게 멋쩍게 웃으며 건네던 그 한 마디가 오늘 밤의 (파스타 먹고 갈래) 였다는 거다. 그 이후로 난, 오랫동안 드런치에 가지 않았다.     

(나쁜 놈. 나한테 그렇게 친절하더니... 감히, 흑심을 품어!!?) 아쉽기는 커녕 괘씸하기만 했다.   

   






하지만 몇 달 즈음 지났을까. 두바이 쇼핑몰 춤추는 분수 앞에서 mahesh를 봤다. 훤칠한 한 남자의 옆에서 내게 보였던 것처럼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수줍고 다소곳해 보였다. 댄디한 옷차림에, 쌕인지, 파우치인지 모를 끈 없는 가방을 팔 사이에 끼고 있었다. 그제야, 세심한 손길 속에 늘 들려있던 그의 새끼손가락, 여자인 나보다 더 살림살이가 많던 그의 파우치가 생각났다. 낯선 남자 옆에서 행복해하는듯한 모습의 mahesh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내게 호의적이었던 사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친절했던 사람. mahesh의 취향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요새 들어 난, 친구 따윈 그리고 깊은 관계 따윈 필요 없다고 자주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무척이나 그립다.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치면 나누는 따듯한 눈짓 인사도, 경계 없이 시작하던 대화도. 온통 ‘다름’ 투성이지만 기꺼이 내밀던 관심의 제스처들도.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하는 호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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