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장모님도 두 명
2년 전 대만 여행 마지막 날 조용한 호텔방에서 남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후 내가 한 질문은 "장인어른, 장모님이 두 명씩 있어도 괜찮아?"였다. "참고로 장모님도 두 명이야" 하자 지금 남편이 된 남자 친구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부모가 이혼함으로써 받는 자녀의 몸과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에 넘쳐흐르지만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해 지금도 일기장에 세세히 기록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88년생인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일 때에도 이혼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도 딱히 이혼가정임을 숨기지 않고 지냈고 다행히(?) 부모의 이혼을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 받거나 움츠러들었던 일 따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구들은 가족 이상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아빠나 할머니, 고모들처럼 항상 옆에 있던 가족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나 말고도 앞으로 남편에게까지 돌아갈지도 모른다니! 근거 있는 앞선 걱정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새삼 부모의 이혼 사실이 너무나 싫더라.
연인이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결혼을 말하는지, 그 순간 내밀었던 꽃이 무슨 꽃이었는지 반지는 어디에 숨기고 있다 꺼낸 건지 음식은 언제 준비했고 흐르던 음악은 어떤 곡이었는지 우리 그때 그렇게 행복했지 하며 인생에서 가장 로맨틱한 날로 기억하고 싶었던 프러포즈 데이가 나에게는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들어왔던 무겁고 날카로운 말들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모여 태풍처럼 쏟아져내린 날로 기억돼버린 것이다.
억울했고, 아직도 종종 억울하다.
청춘 드라마나 영화 속 부모의 이혼을 딛고 일어서 성장하는 주인공 배우에게 조연배우가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넌 이제 다 컸으니 네 인생을 살면 돼 라는 식의 대사를 듣거나 책이나 웹툰에서 비슷한 맥락의 대사를 읽으면 마음속으로, 혹은 혼자 있음에도 소리 내서 큰소리로 열심히 받아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말이야~ 이혼가정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결혼이란 걸 하려고 해 보니 학생 때 빡치는 일 따위 정말 일도 아니더라? 결혼하려고 해 봐, 빡이치다못해 생각이란 걸 하지 못하도록 머리를 어떻게 하고 싶은 기분이 되거든!” 하고.
30대가 된다고,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절대로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는다. 잠시 숨어 있을 뿐. 다들 그런데 나만 유난 떠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처는 원래 완치가 어렵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예전처럼 그 상처가 나있는 스스로의 몽뚱이와 늘 우울함을 품고 있는 나약한 정신을 탓하며 자학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이런 괜찮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로 비슷한 누군가에게 당신이 이상하고 예민한 것이 아니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