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만났던 아빠의 애인들은 싹 다 싫었다.
횟집을 한다고 했던 푸근한 인상의 아줌마는 그럭저럭. 나머지분들은 다들 화장이 너무 진하고 향수 냄새는 머리가 아플 정도에 하나같이 할머니처럼 나와 동생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며 아빠에게 정말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잘’해준다는 것은 어떤 걸까? 고등학교 대학교 대부분을 기숙사와 자취방에서 지내면서 가끔 할머니 집에 갈 때면 1층 할머니 집과 2층 아빠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설거지를 도맡아 했으며 엄마가 집을 나간 후부터는 명절마다 숙모와 제사를 치렀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했으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모두에게 용돈도 부지런히 드렸다.
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아빠가 원하는 대로 했다. 부모와 집안의 어른들께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와 동생에게 당연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혼식 때도 아줌마가 아빠 옆에 앉았다. 엄마는 앉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가 불편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며 결혼을 준비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런 문제들로 너무나 지쳐있었다. 제기랄 까짓 거 아무나 앉으라지.
이혼한 이들의 연애나 재혼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애인을 소개할 때 지금 소개받아도 괜찮겠냐고 한 번은, 꼭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상호 기본적 책임은 지되 선택권을 주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이라면 더더욱.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 책임이란 이혼 여부를 떠나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보호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가 노후에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떤 많은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의 결정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관계는 원만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잦은 안부전화와 진심이 담긴 선물을 챙기고 싶을 때까지 강요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길 바랄 뿐이다. 오래 걸리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 제발!
우리는 세상을 단 한 번, 어린 시절에 본다.
나머지는 기억이다.
루이즈 글뤼크 <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