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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ug 26. 2024

부부라는 틀

 저는 어린 시절 매우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조부모님 댁에서는 식사 때조차 남자와 여자가 나누어 먹을 정도였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가부장적인 사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남편이 종종 집안일을 하고 나서 ‘도와줬다’는 표현을 할 때면 저는 반드시 그 표현을 지적하곤 합니다. 요즘은 마치 집안일이 모두 여자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도와준다’는 표현 자체가 무례하게 여겨질 만큼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저 역시 가부장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집 화장실에 드라이기를 고정하는 거치대가 떨어졌을 때 저는 응당 남편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남편이 고치지 않자 속으로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거야?’라며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왜 이 일을 당연히 남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성 역할을 고정하는 옛날 사고방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제 자신 또한 그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작은 일 하나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하려 합니다. 부부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고정된 틀에 가두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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