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남편은 직업 특성상 여름이면 무척 바빠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죠. 그때마다 남편은 아주 예민해져 저에게 요구사항도, 불만도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을 보며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생색을 낼까?' 하며 언짢아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 문득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이번엔 남편의 예민함이 한결 수그러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무엇을 더 해준 건 아니었지만 그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의 마음이 편안해진 듯했습니다.
부부로서 함께 살아가다 보면 서로의 삶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으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이면에 감춰진 상대방의 고충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죠.
왜 이번 여름엔 내가 남편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제 스스로 삶의 여유를 조금 찾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압박감으로 하루하루 조급하게 살던 제가 불필요한 걱정들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결국 저 스스로에게 여유를 찾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죠.
때로는 자신을 챙기는 여유가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여유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