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말 튀기잖아!!

by 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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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킥보드를 사달라고 조르는 딸이다.

나는 알겠어. 검색해볼게 해놓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시위라도 하는 듯이 갑자기 아기 때 타던 자동차를 꺼내 오더니

한 발로 씽씽~

"이힛!~ 킥보드다~~"


아..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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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출근길.

아빠가 또 상처 받는 일이 생겼다.

사랑스러운 둘째 딸은 늘 예상을 벗어난다.


"우리 채이~ 아빠 회사 다녀올게. 엄마 말씀 잘 듣고 있...."

(버럭 하며) "아! 아빠! 말! 튀기잖아!!"


하하

요즘 같은 시국에 말 튀기면 큰일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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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

밥 먹고 테이블 치우는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인가?


"누가 착해??"


"나 착해"

의자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본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

맞아. 채이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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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킥보드를 사줬다.

핑크빛이 반짝반짝 예쁘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잘 타는가 싶더니 갑자기 거꾸로 밀며

"커피 사세요~ 커피 사세요~"를 외친다.

"허....................채..채이야...."


새로 산 킥보드에 이런 다른 기능이 있을 줄이야..


"아.. 저 커피 마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내 쫒는다.


그제야 반대로.. 아니 원래의 제 기능대로

바로잡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씽씽 한 발로 구른다.


훗.

제법 잘 타네


엄마와 멀어지며 저 멀리 발 구르며 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다 컸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

시간 참 빠르네.

나는 늙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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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자고 싶다...!"는 혼잣말에...

우리 채이가 답을 한다.

"응 그래, 아몬드 생각하면서 잘게. 엄마 잘 자"

하하하

발랄한 음성에 결국 빵 터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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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화가가 나와써!"

"화가가 왜 나와?"

"아니이~!! 화가..가 났다고오!"

"아, .화 ..왜?"

"선샘미가 마스크 못벗게 해서 답답했어!"


아......

그러고보니

마스크자국에 벌게진 양쪽 뺨이 짠하다.

잔뜩 인상 찌푸리며 하루 종일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큰 목소리로 호소하는 채이.


지구 탄소 시계가 7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기사를 봤다.

너희들에게 찬란한 미래는

진정 오지 않을는지 하루하루

살얼음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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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이야 이제 정리 좀 하자"

"응그래장그래"(띄어읽지않음)

"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니?"

"오빠한테서 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나이.

그런데도 희한하게 모든 것을 다

적재적소에 쓴다는 것.




디지털로 그려본 그림.

이렇게 하는 게 좋은지 저렇게 하는 게 좋은지 그림을 그리면서도 항상 고민을 하는 나.

붓펜으로 한 컷을, 한 번에, 스케치 없이! 그리기 때문에 실수라도 하면

뒷장을 넘겨 처음부터 그려야 한다.

실수는 잘 안 하지만 하하.


디지털로 그렸더니 수정은 너무 쉽다.

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없는 느낌이다.

흔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다.

다시 붓펜을 드는 걸로.

가끔은 아이패드 펜슬을 잡는 날도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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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까르르 꺅꺅~

"개드당이는 하지마~ 꺄~악 까르르르르르"


"엄마 나 잘래(정색)"


"뭐라고? 요녀석! 공격!"


"꺄아아아아아아~~"


이토록 순수한 아이의 웃음소리를 십 년 만에 다시 듣다니!

네가 내 딸로 와줬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 내 얘기였다니!

딸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게 듣고 살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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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혼이 나도 용서도 쉽고

뒤끝도 없는데 왜 훨씬 오래 산 어른이

뒤끝이 그리도 길까..

살만큼 살았으면 웬만한 건 그러려니 할 법도 하면서.


생각해보니

나의 한없이 낮은 자존감이 저 뒤끝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


뒤끝의 끝이 진짜 완전 끝이 되어버리기 일쑤인 이유는

덜 성숙된 인격체가 그저 상황과 관계를 피하기에 급급하니까

그런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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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입고 놀이를 했다고 자랑하는 채이.

"엄마 나 뭐 던지는 거 했는데 그게 뭐게~?"

단어가 생각이 안나 물어보는 거면서.. 알면서 물어보는 듯 물어보는 딸이다.

"투호놀이?"

"딩동댕!"

속으로 아. 그거구나 하는 눈치다.

"엄마 돌로 이렇게 옮기는 것은 뭐게~?"

또 모르나 보다.

"비석 치기?"

"딩동댕!"

분명히 모르면서 아는 척 딩동댕을 외친다.

"와~엄마 똑똑하다"

후훗 리스펙!!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었다.

그림 맞추기. 화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몇 판만 쳐드리자 하고 한참을 지루한 판을 이어갔다.


남편이 "아버님~ 저 좀 밀어주시죠?" 한다.

아버지는 왜인지 못 들은 척을 하신다.

남편은 다시 "아~아버님~ 저 좀 밀어주십시오!"

피식 웃음이 난다.


이때, 후다닥 생쥐처럼 채이가 달려와서는

"아빠! 아빠! 내가 밀어줄게!! 으얍~!!!"

온 힘을 다해 아빠를 미는 딸.


아버지는 그제야 "잘한다 잘한다! 팍팍 밀어라!"


하하하 웃음이 번진다.

지루함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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