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만난다.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산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아파트를 나와서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거기서 아침마다 시니어 어르신들이 교통지도를 하신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교문까지 약간 오르막길이다. 오르막길을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힘차게 달려오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일부러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걷기도 한다.
그러다 내 앞에 오면 숨을 몰아쉬며 멈춘다. 은근히 말을 걸어주길 바라는 눈치다. 아이들은 휴일에 혼자 게임한 이야기, 부모님이랑 놀이공원에 다녀온 이야기, 감기 걸려 아팠던 이야기를 하다가 교문으로 들어간다.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잠깐 비가 내리다 그쳐서 우산을 들고 교문으로 나갔다. 9시 수업 시작이라 아이들은 8시 30분~50분 사이에 가장 많이 등교한다. 아이들은 늘 비슷한 시각에 온다. 일찍 오는 아이는 일찍 오고, 늦게 오는 아이들은 늘 그 시간에 온다.
8시 50분, 두리가 갑자기 귀를 부여잡고 소리친다.
“우악, 이게 뭐야?”
교문 앞에 있던 나는 놀라서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벌. 벌에 물렸어요”
두리는 양쪽 귀를 감싸며 ‘우왕’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우산을 펼쳐 들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리로 와. 우산으로.”
커다란 말벌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나는 두리를 우산 속에 숨겨서 교문으로 올라왔다.
그 사이 아래쪽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악, 여기도 벌이..”
“무서워,”
“나도 물렸어.”
나는 다시 뛰어 내려가서 벌들을 우산으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등교하던 아이들 머리 위에 말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도망가지도 않고 딱 붙어 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만 보였는데 어느새 점점 더 많은 말벌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화로운 아침 등교 시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19에 신고를 했다. 나는 우산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시니어 어르신은 쓰고 있던 모자를 휘둘러 벌을 쫓았다. 선생님들은 나와서 아이들을 보건실로 데리고 가고, 보건 선생님은 응급치료를 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학교로 달려왔다. 제일 먼저 도착한 차에서 말벌 퇴치를 전문으로 하는 소방대원이 내렸다. 말벌보호복으로 갈아입은 소방대원은 학교 앞 횡단보도 주변을 샅샅이 살피더니 낮은 나무들 뒤에서 말벌 집을 찾아냈다. 약을 뿌리고 벌집을 해체했는데, 길 건너편에는 땅벌 집도 발견되었다. 땅속이라 벌집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약을 잔뜩 뿌렸다.
말벌에 물린 아이들이 보건실에 모였다. 머리에 물린 아이, 귀 뒤에 물린 아이, 다리에 물린 아이들, 모두 9명이다. 연락을 받은 부모님들은 놀라서 학교로 뛰어왔다. 아이들을 응급실로 이송할 구급차도 학교로 달려왔다. 학교 앞은 혼잡한 상황을 정리하려고 교통경찰도 출동해서 북적대고 있었다.
근처 큰 병원 3곳으로 3명씩 나눠서 구급차로 이송했다. 교사가 한 명씩 아이들과 함께 갔고, 학부모님들은 같이 가거나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벌에 쏘인 학생들은 모두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말벌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 하던 할아버지도 벌에 쏘였다. 아이들 머리에 붙은 말벌을 모자로, 손으로 쫓고 짓이기다가 8방이나 물렸다. 다행히 병원 진료받았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올여름, 유난히 폭염이 심해 말벌 수가 늘어났고, 119 소방출동도 말벌신고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근처 공원에서 풀을 깎던 분은 말벌에 쏘여 돌아가시기도 했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말벌 소동으로 아무 일 없던 하루가 얼마나 감사 한 건지 깨달았다. 혹시라도 말벌에 물린 아이 중에 말벌 알레르기가 있었다면 어쩔뻔했나! 9명의 아이들이 모두 무사한 게 가장 감사하다. 신고를 받자마자 달려와 준 119 구급대원들, 횡단보도에서 말벌을 쫓아대던 시니어 어르신, 응급실까지 함께 동행한 학교 선생님들 모두 감사하다.
그 후로 아침맞이를 하기 전, 횡단보도 근처 나무를 꼭 살핀다. 혹시 또 말벌이 나올까, 혹시 아이들이 쏘일까. 붕붕거리는 벌레만 봐도 말벌인 줄 알고 기겁을 하며 쫓아 내려간다. 파리였다. 아, 이제는 말벌과 비슷한 파리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산책하다 뱀이 나와도 무서워하지 않던 내가 이제는 (말벌 닮은) 파리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