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도시락

by 맑은샘

재우는 1학년,

우리 반이면서 방과 후에는 돌봄 교실에 간다.

재우 엄마는 조선족인데 늦은 나이에 한국 남자와 재혼해서 재우를 낳았다. 재우는 늦둥이에 귀한 외동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재우는 아침밥을 먹고 오느라고 자주 지각을 했다. 아침밥 핑계를 대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재우 엄마는 재우가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고 푹 자게 했다. 게다가 늦게 일어난 재우에게 꼭 아침밥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재우는 억지로 아침밥을 먹느라 늦은 거였다.

재우 엄마가 아침밥을 챙기는 이유가 있었다. 재우는 돌봄 교실에서 늦게까지 있어서 점심은 학교 급식을 먹고 저녁은 돌봄 교실에서 먹었다. 재우 엄마가 아들에게 밥을 챙겨 줄 수 있는 유일한 끼니가 아침 한 끼였다.


5월, 현장학습을 갈 때였다. 교문에 들어서니 등굣길 양쪽으로 하얀 꽃이 잔뜩 피었다. 이팝나무였다. 예전에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쌀밥처럼 꽃이 피어서 ‘이 밥 나무’라고도 했단다. 흰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라는데 해마다 학교에 이팝나무 꽃은 활짝 피는데 학교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재우도 그런 아이였다.


재우가 또 아침밥을 먹느라 지각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찍 왔다. 현장학습 가는 날이라 기분 좋아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으로 누룽지를 먹었다고 했다.

현장학습 가는 날인데 누룽지라 좀 이상한 생각은 들었지만 워낙 어머니 나이가 많아 음식도 옛날식으로 먹나 보다 했다.


문제는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기다리던 점심시간,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을 꺼냈는데 재우는 빈 도시락을 꺼냈다.

“넌 왜 아무것도 안 싸왔어?”

재우 짝꿍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도시락만 가져오라고 했잖아.”

재우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빙 둘러서서 재우의 빈 도시락을 구경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재우 말이 맞았다. 돌봄 교실에서는 빈 도시락을 가져가면 돌봄 선생님이 밥과 반찬을 줬다. 그래서 알림장에 쓴 준비물 ‘도시락’을 재우는 그렇게 생각한 거였다. 재우 엄마도 평소처럼 아침 한 끼만 든든히 먹이고, 점심은 빈 도시락을 챙겨 보냈다.


“재우야, 선생님 김밥 하나 먹어 볼래?”

난 출근하면서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산 김밥 하나를 재우의 빈 도시락에 넣었다.

두 개도 아니고 한 개를 넣는 걸 보고 아이들은 부담이 없었나 보다.

재우 짝꿍도 나처럼 재우 도시락에 자기가 싸 온 유부초밥 하나를 올려놓았다.

“내 것도 먹어.”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자기 도시락에 있던 샌드위치, 주먹밥, 김밥을 하나씩 재우 도시락에 넣었다. 재우의 빈 도시락이 금방 가득 찼다. 재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이 재우는 친구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재우야, 미안해! 너에게 김밥 든 도시락이라고 귀띔이라도 해야 했는데. 그래도 오늘 점심 나름 괜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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