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넘어도 준영이 자리는 늘 비어있었다.
준영이는 아버지와 둘이 사는데 아버지가 요리사라 밤늦게 퇴근하고 늦게 출근했다.
아버지가 늦잠을 자니 준영이도 따라서 늦잠을 자는 거였다.
지각이 너무 잦아 걱정이라고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죄송하다며 일찍 깨워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다.
그 후 며칠은 준영이가 일찍 왔다. 어떤 날은 세수도 못 하고 얼굴에 침 흘린 자국 그대로 왔다.
아버지가 억지로 깨워서 보낸 거였다. 일주일쯤 지나자 아버지도 지쳤는지 준영이는 다시 늦게 왔다.
방과 후에 준영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준영아, 어떻게 하면 일찍 올 수 있을까?”
처음에 쭈뼛쭈뼛 말이 없던 준영이가 겨우 한마디 했다.
“나 혼자 일어나면 벌써 늦었어요.”
“그럼 선생님이 핸드폰으로 깨워줄까?”
준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마다 선생님이 자기에게 전화를 해 준다니 좋았나 보다.
준영이는 자기 핸드폰이 없다며 아빠 핸드폰으로 하란다.
준영에게 모닝콜을 하는 첫날,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아버지가 받았다.
“네. 선생님, 지금 깨워서 보내겠습니다.”
둘째 날, 조금 있다가 받았다.
“……네. 선생님. 보내겠습니다.”
셋째 날, 한참 동안 아무도 받지 않았다. 끊어질 때쯤 준영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준영이에게 넘겼나 보다. 준영이는 꿈속을 헤매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모닝콜하는 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준영아, 준영아?” 한참 있다 “……네.”
이 정도로 끊으면 준영이가 그냥 또 잘 수 있다.
“학교 와야지.” 아무 대답이 없다. 오기 싫다는 뜻이다.
“아침 먹었니?” “……아니요.”
“그럼 얼른 세수하고 학교 와. 오늘 메뉴가 가만있자……. 불고기네.”
고기라는 말에 준영이가 알았다고 했다.
모닝콜은 항상 성공적이지 않았다. 급식이 별로 맛이 없거나, 아버지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으면 준영이는 그냥 잤다. 그런 날은 쉬는 시간마다 전화했다. 12시가 넘어서 학교에 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 준영이는 부끄러워 그랬는지 교실에 와서 책상에 엎드렸다. 아이들이 말을 시켜도 그냥 책가방만 끌어안고 있었다.
모닝콜 약효가 거의 떨어질 무렵, 준영이가 알아서 학교에 일찍 왔다.
첫날에는 아버지가 쉬는 날인가 했는데 둘째 날도 일찍 와서 물었다.
“와! 오늘도 일찍 왔네. 누가 깨워줬어?”
“지역센터 선생님이요.”
뭐라고? 깜짝 놀랐다. 준영이는 집에서 아버지랑 잔 게 아니었다. 준영이는 방과 후에 지역아동센터를 다녔는데 거기서 잠을 잤단다. 원래 저녁 먹고 집에 갔었는데 24시간 돌봄으로 바꿨단다. 준영이는 평일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있다 잠도 자고 주말에만 집에 가기로 했다.
그 후 준영이는 일찍 학교에 왔지만 기운 없어 보였다. 생기가 나는 때는 금요일이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준영이가 그날에는 앞에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집에 가는 날이에요.”
“그래. 기분 좋겠구나.”
준영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는 매일매일 가는 집을 준영이는 손꼽아 기다렸다.
주말에 집에 갔다 오면 일부러 앞에 나와 서성거렸다. 나는 그런 준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랑 주말에 뭐 했어?”
“같이 텔레비전 보고 게임방에 가서 놀았어요.”
“재미있었겠네.”
“네. 집에 와서 짜파게티도 해 먹었어요.”
그래. 아버지랑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구나. 특별한 건 아니더라도 그냥 아버지랑 함께 하는 그 시간이 행복했구나. 준영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 보였다.
준영이 얼굴이 환한 날이 또 있었다. 마을음악회 때였다. 학교 옆 공원에서 마을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학교 교장, 교감선생님, 몇 분 선생님과 함께 참석했다. 가을 저녁이라 제법 쌀쌀했다.
준영이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어? 준영아, 너 오늘 음악회에 나오니?”
준영이는 작은 소리로 “네.” 대답했다.
준영이는 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 무대로 올라왔다. 흰 목티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한 준영이 얼굴이 빨개졌다. 준영이는 리코더를 연주했다. 교실에서 리코더 못 한다고 엄살을 부리던 준영이가 그날은 아주 멋지게 리코더를 불었다. 가로등 불빛과 새로 설치한 조명등까지 환히 비춰 준영이가 멋지게 빛나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내려가는 준영에게 “정말 잘했어.”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날 음악회는 마을의 들썩들썩한 잔치였다. 한복을 입은 민요 가수들이 와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우리 가락을 노래하고 초등학교 오케스트라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음악을 연주했다. 중간중간 추첨을 해서 선물을 나눠주고 팝콘도 튀겨 주었다. 팝콘 기계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 이거요.”
준영이가 내 뒤에 다가와 속삭였다.
“응? 뭐?”
뒤돌아보니 준영이가 슬며시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팝콘이었다. 준영이는 한참 동안 줄을 서서 받은 팝콘을 내게 주었다. 한 개 먹어 보니 고소하고 따뜻했다. 맛있다며 준영에게 같이 먹자니까 자기는 또 받으면 된다며 달아나 버렸다.
가을밤, 가느다란 초승달이 뜨고 서늘한 저녁이었지만 준영이가 내민 팝콘 때문에 포근하고 훈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