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엄마를 기다려요

by 맑은샘

그해는 대통령이 밤 9시가 아니라 10시까지 돌봄교실을 운영하라고 했었다.

아마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중에서 밤 10시까지 실제로 아이들을 돌보아준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았을 거다.

우리학교는 이미 9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밤 10시까지 한다니 돌봄 학부모님들이 환영하는 눈치였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저녁돌봄교실, 직장 다니는 학부모에겐 고마운 곳이지만 아이들에겐 참 서글픈 교실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온 아이들은 밤 10시,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학교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지는 1학년 우리 반인데 연년생 언니와 돌봄교실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가장 일찍 오고 가장 늦게 집에 가기 때문이다. 예지와 언니는 아이들이 하나둘 갈 때마다 문을 쳐다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9시가 넘으면 자매만 남아 꼬박꼬박 졸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가 오면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서 “왜 지금 왔어. 기다렸잖아.”하며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예지는 반가워하며 엄마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엄마와 밤 10시에 집으로 간 예지는 다음 날 아침 8시 반에 교실에 왔다.

“엄마 벌써 출근하셨어?”

“네. 엄마가 아침에 일찍 출근한 거 맞는데요. 어제저녁 엄마가 늦게 퇴근한 건 아니래요. 일찍 퇴근했는데 아빠랑 싸워서 일부러 늦게 온 거래요.”

예지는 서운하다는 듯 밤사이 있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다 엄마에게 한 것처럼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예지가 쿡쿡 웃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아빠 결혼식 한대요.”

“결혼식?”

아직 예지가 1학년이라 뭘 모르고 한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예지 엄마가 청첩장을 갖고 왔다.

예지 부모님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사느라 결혼식을 못 했단다. 둘이 자꾸 싸우니까 예지 할아버지가 결혼식을 안 해서 그런가 하며 맘 잡고 잘 살라고 결혼식을 시켜 주는 거란다. 예지 엄마는 신혼여행도 갈 거라며 예지와 언니의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일주일 동안 돌봄교실이 썰렁했다. 예지와 언니의 빈자리가 컸다.

예지가 돌아온 날,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참았을까 싶게 아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식 날 언니랑 화동을 했어요. 엄마가 정말 예뻤어요. 부모님 둘만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는데 우리는 이모 집에서 기다렸어요. 엄마 아빠가 올 때 우리 선물을 사 왔어요. 뭔 줄 아세요? 처음엔 비밀이라더니 돌하르방이라고 했다.


결혼식을 하고도 예지 부모님은 자주 싸웠나 보다. 예지는 아침에 교실에 오면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얘기했다. 저녁에 엄마가 술 먹고, 아빠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슬퍼서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날은 밤 10시가 됐는데 예지와 언니만 남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이 다 귀가하는 걸 보고 퇴근했는데 예지 엄마가 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나를 보고 돌봄전담교사가 말했다.

“예지 엄마가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은 얼른 퇴근하세요. 집이 멀어서 지금 가도 11시잖아요.”

나는 10시가 넘어 불안한 마음으로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정말 그날 큰일이 생겼다.


곧 오겠다던 예지 엄마가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돌봄전담교사가 전화를 하니 술 취한 목소리로 친구를 대신 보낼 테니 애들을 보내 달라했다. 돌봄전담교사는 부모님이 와야 아이들을 귀가시키는데 밤늦게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참 후에 나타난 예지 엄마는 운동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자기를 오라 가라 하냐’ 고함을 치며 난동을 부렸다. 돌봄전담교사와 당직기사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단다.


다음날 아침, 예지는 학교에 늦게 왔다.

“엄마는 어떠시니?”

“자고 있어요. 엄마는 술 안 먹으면 정말 좋은데. 어제는 일찍 퇴근해서 계속 술을 먹었대요.”

내 손을 잡은 예지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젯밤, 예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돌봄교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갈 때마다 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그래도 착한 예지는 서운함보다 엄마 걱정이 먼저였다.

엄마가 아프고 토하느라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전 크면 술 안 마실래요. 엄마한테도 술 먹지 말라고 할 거예요.”

1학년 예지가 엄마보다 더 의젓해 보였다.

얼마 뒤 예지네는 할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전학을 갔다.

가끔 밤 10시가 되면 예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예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엄마가 일찍 와서 같이 따뜻한 저녁을 먹었을지. 여전히 언니와 둘이서 엄마를 기다리며 문밖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 궁금하다.


밤 10시까지 하던 돌봄교실은 그 뒤로 9시까지 하다가 이젠 6~7시면 학생들이 귀가한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던 건 뭐였을까?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하도록 학교에서 돌봐 주는 거였을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집에 함께 있는 거였을까? 아이들에게 진정한 돌봄이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거, 그리고 소박한 음식이라도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밥을 먹는 게 아니었을까?


예지가 한 명한 명 갈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손을 꼬옥 잡았을 때 나뭇잎 같던 가벼움과 따뜻함도 생생하다.

예지가 잡고 싶은 건 내 손이 아니라 엄마 손이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예지가 엄마와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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