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by 맑은샘

학교 합창부 지휘, 스카우트 대장, 환경봉사대 학생 지도, 학교 숲 관리…….

내가 교사가 되어 맡았던 업무들이다. 그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돌봄교실 관리교사였다.


아침 7시에 출근하면 밤 10시쯤 집에 왔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돌봄교실 운영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교육부 장관까지 방문할 정도였다. 부모님이 퇴근하는 밤 9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저녁돌봄교실이 3개 반이나 있었다.


출장을 갔다가도, 교직원 전체 회식을 하고도 돌봄교실 때문에 학교로 갔다. 돌봄교실 관리교사는 그게 업무였다. 밤 9시, 돌봄 아이들이 다 갈 때까지 돌봄전담교사와 함께 학교에 있는 거였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후회스러웠다. 그때는 학교 교무부장이라 담임교사와 부장 업무만으로도 체력 방전될 지경이었다. 돌봄교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는 늦은 시간까지 교실에 있으려니 누에고치가 된 기분이었다.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방학에도 매일 출근해야 했다. 돌봄교실 방학만 쉴 수 있었다. 일주일 방학 외에는 돌봄 학생들처럼 나도 학교에 갔다. 다른 학생들과 부모님, 동료 교사들은 시원한 해수욕장으로, 산으로, 해외까지 가는데 부러웠다. 꼼짝없이 교실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하다니!


그날도 평소처럼 돌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교실로 왔다. 방학 기간이라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정말 조용했다. 휘몰아치는 태풍 같은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은 더욱 그랬다. 혼자 교실에 앉아있으니 낯설고 어색했다. 너무 고요해서 그런가? 그러다가 순간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지?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 아, 그때도 이랬는데.

예전에도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언제였지?

희미하던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더니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혼자 교실에 있었다. 전학 간 시골 학교의 작은 도서실이었다. 말이 도서실이지 그냥 교실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 벽에 유리문이 달린 책장이 있었다. 책장 안에는 세계 동화전집, 위인전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책을 읽으며 뜨거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6학년 때, 나는 서울에서 바닷가 근처 시골 학교로 전학 갔다. 나랑 친해진 아이는 수업 끝나고 집에 가면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집에 있어야 해서 나는 혼자 외롭게 지냈다.


여름방학이 되자 더 외롭고 쓸쓸했다. 남동생을 비롯한 온 동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살았다. 나도 몇 번 수영을 배우려고 따라갔는데 바다가 너무 무서웠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몸이 굳었다. 동생은 하루하루 수영 실력이 늘어갔고 나는 종일 몸만 비틀어댔다.


그러다 내가 찾아낸 곳은 학교 도서실이었다. 소공자, 소공녀, 장발장,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


나는 동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다이빙하고 작살 낚시를 하는 동안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그 교실에는 없었다. 선풍기가 없어 창문만 열었는데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참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교문 앞 나무에서 우는 매미 소리만 들렸다. 그 교실은 책 속 주인공을 만나는 나만의 행복한 공간이었다.


시골 학교 도서실 생각이 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학교에 오래 남아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랬을까?

그 후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처음처럼 힘들지 않았다. 교실에 남아있으면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교실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점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돌봄교실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들은 책 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품고 있었다. 마치 책 속 주인공이 현실 세계로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소풍 가는 날 빈 도시락을 가져온 아이,

교사가 모닝콜을 해야 학교에 겨우 오는 아이,

밤 10시까지 엄마를 기다리며 꼬박꼬박 조는 아이.

나는 책 보는 것 대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돌봄교실 아이들의 진솔한 모습이 보이자 훨훨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꽃과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나에게 글이란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서, 아이들이 혼자 겪어내야 하는 게 힘들어 보일 때 나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네가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우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다독거렸다.


초등학교 6학년, 전학 가서 외로운 나에게 책 친구를 소개해 준 교실, 거기서 나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제 내 친구는 더 이상 책 속에 있지 않았다. 내 곁에서 떠들며 돌아다니고 키득거리며 웃는 아이들이 진정한 나의 주인공이었다. 이제 그 교실에서 나처럼 외롭고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있는 교사로 지내고 있다.


* 이 글은 2012~2017년까지 돌봄교실을 업무를 맡으며 쓴 글입니다. 이어지는 글들은 그때의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개인정보로 가명, 재구성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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