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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Dec 10. 2024

달항아리

  박물관에서 하얀 항아리를 봤다. 예전에 외갓집에 있던 항아리와 비슷했다. 하도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여 이런 게 왜 여기 있을까 하며 지나갔다. 몇 걸음 가는데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되돌아가 다시 보니 가운데가 불룩하고 약간 기운 것 같아 오히려 정이 가는 모양이었다. 어두운 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달처럼 보이는 그 백자는 조선 후기의 보물, 달항아리였다.


  달항아리는 너무 커서 한 번에 빚을 수가 없단다. 상하를 따로 만들어 붙이기 때문에 도공의 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이 나온다. 부정형의 원으로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백자였다. 그 달항아리를 보니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아버지를 신문광고로 만났다. 유치원 교사였던 순진한 엄마는 신붓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다. 둘은 명동의 빵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천생연분인지 몇 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서야 엄마는 너무 다른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부모 모두 대학 교육을 받은 괜찮은 집안의 딸이었는데 아버지는 농부의 아들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만 강한 청년이었다. 


  서로 다른 상하 그릇을 붙여야 온전한 달항아리가 되듯 엄마는 결혼 후 별천지의 환경을 온전히 품어 내야 했다. 그 안에는 굽힐 줄 모르는 아버지의 자존심과 친정과 다른 시댁의 문화가 있었다. 엄마는 예민하고 또렷한 성품이었는데 무심한 듯, 어리숙한 듯 그런 것을 받아들였다. 


  어린 내 눈에도 엄마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했고, 엄마는 늘 뒤치다꺼리에 해야했다. 혹시 학교 갔다 왔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어디로 갔을까 봐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자다가 엄마가 죽는 꿈이라도 꾸면 난 울면서 깨어났다. 그럴 때는 온 세상이 깜깜한 밤처럼 무섭고 불안했다. 나에게 엄마는 해와 달처럼 사라지면 세상이 끝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나는 결혼하고서야 알았다. 엄마가 품고 견딘 것이 얼마나 뜨거운 열이었는지 그것으로 인한 엄마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이모들과 미장원에서 드라이하고 손톱관리받으며 유치원에 출근하던 엄마는 결혼 후에는 몇 천 원짜리 티셔츠 사는 것도 고민했다. 엄마보다 먼저 남편과 사 남매, 시부모와 시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엄마의 결혼생활은 가족을 품어 내느라 당신 것은 점점 더 크게 비워 갔다. 엄마는 그렇게 아주아주 큰 달항아리가 되어 갔다. 


  달항아리를 가까이에서 보니 잔잔한 균열과 갈라진 금이 많았다. 이 빙열들은 얼룩져서 특이한 문양을 보이는데 이게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프랑스의 문명 학자 기 소르망은 달항아리가 ‘한국의 모나리자’라며 극찬했다. 엄마의 삶도 비슷했다. 하루를 살고 나면 갈라진 상처가 생기고 거기에 다음날 또 다른 아픔으로 진한 얼룩이 생겼다. 그런데 엄마는 그 얼룩을 자신만의 고유한 무늬로 만들었다. 


  엄마는 주변을 환하게 하고 생동하는 기운을 뿜어냈다. 건조한 사막 같은 아버지 옆에 시원한 물과 쉼이 있는 오아시스 같은 엄마가 있었다. 아버지가 집안에 먹구름을 끌어들이면 엄마는 잔잔한 바람으로 몰아내며 별거 아니라고 했다. 서울과 지방, 도시와 시골을 전전하는 잦은 이사에도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새로운 곳에서 엄마는 주변을 따뜻하게 녹이는 봄햇살처럼 사람들을 온기로 감싸 안았다.  


  엄마는 힘든 현실을 해학적으로 푸는 여유도 있었다. 자식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호랑이 등에 탔구나. 내릴 수도 멈출 수도 없으니. 어쩌겠니? 그냥 버틸 수밖에.” 했다. 엄마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고 다 자신이 겪을 일만 오는 거라며 철학자 같은 말을 했다.


   올해 초, 여든이 넘은 나이에 엄마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일 때 치던 피아노를 60년이 지나 다시 치는 것이다. 컵을 쥐면서도 손을 떠는데 어떻게 피아노를 치냐고 놀라워했다. 엄마는 그러면 어떠냐며 떨리는 손으로 피아노를 치면 더 잘 친다며 해맑게 웃는다. 초등학생과 함께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엄마, 엄마에게 인생이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하루였다. 


  너무나 다른 환경도 가족을 위해 당신 것 인양 품어 내는 엄마.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보다 더 큰 것도 감당하며 넓히고 비어내며 살았다. 그렇게 품다가 조금 금이 가거나 얼룩이 생겨도 그럴 수 있지 당신 스스로를 어루만지며 살아갔다. 


  어린 시절 나에게 달처럼 환하기만 했던 엄마는 크면서 보니 갈라진 금과 얼룩이 많은 달항아리였다. 그 달항아리 안에는 사랑의 샘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말랐던 샘에 물이 차오르듯 내 마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이 슬며시 차오른다. 엄마는 나를 위해 하늘에 떴던 달이 땅에 내려와 커다란 달항아리가 된 것 같았다. 마치 박물관에서 모르고 스쳐 지나갔던 나를 다시 불러준 달항아리처럼 엄마는 나를 세상에 불러내어 살포시 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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