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자동차
" 어머, 이 차 어디 거예요? 외제차 맞죠?"
"외제차 아닌 거 같은데, H사거 아니에요?"
어디를 가나 내 애마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주인인 나는 오히려 내 차가 외제이든 국산이든 아무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나에게 자동차는 그저 잘 굴러가면 그만이지
그렌저든, 에쿠스든, 제네시스든, 벤츠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엉덩이가 예쁜 차를 좋아한다.
빨갛고 엉덩이가 예쁜 지금의 애마가 내게로 온 건 6년 전이다.
평소 남편은 안전성을 고려해 비교적 큰 차를 선호했다. 물론 남편의 체구가 크다 보니 그런 점도 고려 했겠지만...
반대로 나는 아무 데나 주차하기 쉽고 작은 체구에 맞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경차를 선호한다.
철저하게 다른 취향을 누리고 있던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사별이라는 운명이 닥치면서
나 혼자 차 두대를 관리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G는 내가 운전하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계속 M을 운전하고 다니려니 이제 나도 안전을 생각할 나이가 됐고. 고민고민 하고 있는데 남동생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누나, 우리 회사에 차 많으니까 내가 누나에게 딱 맞는 차 하나 보낼게, 매형 차랑 누나차는 이참에 다 정리하는 게 낫겠어."
동생은 방송국에 촬영용 차를 대여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차를 구비해 놓고 있었다.
얼마 전 드라마 촬영이 하나 끝났으니 그때 사용 된 차 중에서 내가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차를 한대 주겠다는 것이다.
며칠간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얼마 후 지금의 내 애마를 만날 수 있었다.
크기도 적당하고 활달한 내 분위기에 맞게 빨간색으로 분칠 한 엉덩이가 예쁜 차.
처음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내 차에 대한 애착은 변함없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면서 은근히 튀기 싫어하는 내게 부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논쟁뿐 아니라 도로를 달릴 때나 주차장에 주차해 있을 때조차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거 같았다.
처음엔 이유를 몰라 당황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내차 그 갈매기처럼 생긴 마크... 어디 차야?"
"아, 그거 어디 차 마크가 아니고 촬영용으로 자체 제작 한 거야."
동생의 대답인즉은, H사의 차를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명품차처럼 보이기 위해
듣보잡의 마크를 부착 한, 한마디로 근본도 국적도 없는 차라는 것이다.
이 말에 나는 그간의 속상했던 마음을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마치 명품에 환장한 여자가 짝퉁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모두 손가락질하는 거 같다,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실을 설명할 수도 없고... 당장 차를 바꿀 수도 없고...
"누나, 요즘 사람들 그런 거 신경 안 써. 어떤 사람들은 차를 사서 아예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튜닝도 하고... 누나가 생각하는 거만큼 사람들 누나에게 관심 없어. 괜한 자격지심으로 누나를 괴롭히지 마.
친구들 다 나이키 신을 때 삼천 원짜리 보세 운동화 신고 중고책방 누렸던 우리 누나 어디 갔어?"
'자격지심'이란 동생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난 비싼 옷, 비싼 신발이 아니더라도 중고서점 바닥에 앉아 손바닥 만한 삼성당문고 시리즈만 읽을 수 있어도 행복했던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였지.'
둘째네가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0찌 가방을 하나
사 왔다. 크지도 않은 가방이 사백만 원 가까이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세일해서 사 온 가격이라니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번단 말인가?
평소 명품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다 보니 비싼 가방이라도
그저 어딘가에 모셔 놓고 잘 들지도 않게 되었다.
어쩌다 그 가방을 메고 나가는 날이면 돈의 무게만큼 어깨가 무직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둘째네가 들으면 섭섭할 일이지만...)
올케가 선물해 준 명품가방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머니, 지난번 사드린 가방 잘 들지 않으시는 거
같아 이번에 태국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실만한 가방
하나 더 사 왔어요. 이 가방은 비싼 거 아니니까
교회 가실 때 들고 다니세요."
심플한 디자인에 적당한 크기, 무엇보다 그리 비싸지 않은 중저가의 고급스러움이
맘에 쏙 들었다.
며느리 말대로 교회 갈 때, 결혼식 갈 때,
친구 만나러 갈 때... 데일리로 잘 들고 다닌다.
내 빨간 애마는 딱 그 가방과 같은 느낌이다.
데일리로 부담 없이 사용하기에 딱 좋은 차.
그거면 됐지, 남의 시선 뭐 그리 중요할까?
동생 말처럼 괜한 자격지심에 나답지 않게 속을 끓였던 시간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준 내 애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큰애네는 멋진 키홀더를 사 와 낡은 자동차키를
새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작은아이는 핸들커버를 사 와 자동차 핸들을 새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잔뜩 주눅이 들었던 내 애마는 다시 발그레하게 웃으며 빵빵 잘도 달린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품이라고 뽐내듯 엉덩이 살짝 치켜들고 오늘도 go~go 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