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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3. 나이야  가라!

아직도 다이어트 중

언제부턴가 ‘백세시대’, ‘실버파워’ 이런 말들이 어색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3, 4년 전부터 3040세대는 줄고 6080세대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권자 100명 중 17명이 노인으로 60대 이상 유권자가 40%나 되는 실버파워 초고령 사회로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표심잡기에 발 빠른 정치권뿐 아니라 의류, 화장품, 유통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6080세대 중심의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시니어 모델, 시니어 크리에이터, 시니어 파워블로거 등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다양한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도 많다. 

   



  

“저거, 저 뱃살을 어떻게 해?”

“글쎄 말이에요. 왜 젊은 사람이 살도 안 빼고 저러나 몰라.”

얼마 전 입사한 40대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두고 어르신들의 입방아가 한창이다. 

“어르신 나도 살 빼고 싶어요, 근데 어디 살 빼기 쉽나요?”

“아, 젊은데 살 빼기가 왜 어려워! 나는 예전에 100kg이나 나갔던 사람이야, 무조건 적게 먹고 운동해야지, 

그래야 살이 빠지지.”

“그래, 아직 한창인데 건강도 생각해야지.”

“알았어요, 어르신 이제부터 살 빼겠습니다.” 

성격 좋은 젊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어르신들의 훈수에도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많다. 과거의 직업들도 보면 00 마을금고 이사장부터 대기업 임원 출신, 수의사, 사업가, 교수, 학원장이거나 그들의 부인들이다.

그러다 보니 치매 노인이라 해도 젊을 때 습관대로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 조절도 하며 자기 관리를 한다. 7080 할아버지 할머니는 옛말이다. 겉모습만 보고 나이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가끔 어르신끼리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 이리 와유, 화장실 가게.”

“그류 같이 가요 언니.”

배회가 주특기이신 J어르신과 Y어르신은 단짝이다. 화장실 갈 때도 꼭 같이 가고 식사도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함께 다닌다. 주로 나이가 어린 Y어르신이 J어르신을 살뜰히 챙긴다.

“근디 언니, 내 물 컵은 어디 가쓰까?”

“물컵이유? 아 물 컵 저기 있잖유.”

“어, 그러네, 고마워유 언니.”

“아 근디 왜 자꾸 나보고 언니라 그르유! 언니가 언니면서!”

“왜 내가 언니유? 언니가 언니지!”

“기분 나쁘게 왜 그류? 나 언니 아녀유!”

평소 서로 살뜰히 챙기다가도 ‘누가 언니인가?’ 문제에 부딪히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툰다. 

“어르신, Y어르신이 동생, J어르신이 언니 맞아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개입하고 나서야 ‘누가 언니인가?’ 갈등은 끝난다.


어르신들은 오전에 센터에 등원하면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자유롭게 어르신 신체 상황에 맞게 워커를 이용해 레드코드를 몇 바퀴 돌거나 간단한 스트레칭과

걷기를 한다. 모두 등원하는 9시 40분쯤 되면 어김없이 국민체조가 시작된다.

오전 간식을 드신 후 슬링운동 40분을 매일 규칙적으로 하며 관절의 유연성과 신체 잔존기능을 향상 또는 

유지를 위해 훈련한다. 센터에 오래 다닌 어르신은 팔이나 허벅지 근육이 젊은 사람 못지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 뒷모습을 보면 사십 대를 방불케 한다.


“어르신 식사 좀 더 하셔야죠.”

“아녜요, 난 원래 젊을 때부터 양이 작아요.”

연상연하 커플의 B어르신은 아직도 다이어트 중이시다.     

“나는 왜 마스크 팩 안 해줘요?” 

일주일에 한 번 목욕 후 어르신들에게 제공되는 마스크 팩은 단연 인기 최고다.

바쁜 일손에 가끔 빠뜨리기라도 하면 어르신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마스크 팩을 붙이고 드라이로 머리를

다 말리고서도 어르신들은 좀처럼 마스크 팩을 떼지 않는다. 

“어르신 마스크 팩 너무 오래 붙이고 계시면 주름 더 생겨요,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들면 팩은 떼셔야 해요.”

몇 번을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트 팩 떼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어머 어르신 오늘은 팔찌를 두 개나 하고 오셨네요, 목걸이는 세 개나 하고 오시고.”

센터에 등원할 때마다 화려한 모자에 화려한 지팡이를 짚고 오는 O어르신. 요즘 멋 내기가 한창이다. 

매일 하늘하늘 거리는 원피스나 치마를 입고 목걸이와 팔찌를 주렁주렁 차고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어르신들도 금반지나 금팔찌 등을 경쟁적으로 착용하기 시작했다. 


“원장님 00 어르신 금팔찌 센터에서 잃어버렸다고 보호자가 연락 왔어요.”

“그래요? 언제 하고 오셨는지 그 날짜 CCTV 한 번 봅시다.”

결국 사달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팔찌를 잃어버린 어르신이 이동한 곳마다 CCTV를 돌려 보고서야 팔찌를

찾을 수 있었다.     

치매 어르신들은 금방 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귀중품을 잃어버렸을 경우 찾기가 어렵다.

금팔찌를 잃어버린 어르신은 오전에 혈압을 측정하면서 옷 주머니에 넣었다 깜박하신 경우다. 또 어르신끼리 돈을 주고받거나 귀중품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돈이나 물건을 분실하게 되면 어르신들 모두 기억을 못 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어르신들 센터 오실 때 귀중품 착용하지 않도록 교육해 주시고 보호자들에게도 공지해 주세요. 이제부터 센터에서 분실한 귀중품에 대해서는 센터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해주세요.”

원장님의 강력한 공지가 있고 나서 멋 내기 경쟁은 끝이 난 듯 보였다.


“어르신, 원장님이 귀중품 착용하고 센터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하고 오셨네요!”

“쉬, 조용히 해, 그래서 한 개만 하고 왔잖아.”

“아니 어르신 요즘 왜 이렇게 멋을 부리시는 거예요? 좀 이상하신데?”

“왜긴 왜여, 멋진 영감 만나려고 그러지.”


부끄러운 듯 힐긋 쳐다보는 어르신 눈빛에 반짝 젊음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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