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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3. 나이야  가라!

영감이 최고야!

“뭐야! 빨리 밥 가져와! 아이, 배고파 죽겠네!”

아침에 등원하자마자 늘 하는 밥 타령. 자칭 서울대 성악가를 나왔다는  H어르신이다.  

“내 신발 어디 갔어? 신발 가져와!”

고상한 외모와 달리 거칠게 말하는 어르신 행동에 가끔 동료어르신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저이는 남편이 다 받아줘서 저래.”

“그러게 말이야 지 말만 말이라고 만날 난리니…….”

“아, 시끄러워! 그만해!”

“어르신, 예쁜 말 쓰셔야죠, ‘신발 좀 주세요.’ 해보세요.”

그러면 어르신은 두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한 후 

“선생님, 신발 좀 줘요.”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우리 영감 어디 갔어? 빨리 우리 영감 오라고 그래!”

어르신이 당황하거나 실수했을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어르신에게 ‘우리 영감’은 만병통치약이다.     

세계 치매 환자의 3분의 2가 여성일 정도로 남성보다 여성이 치매 및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높다. 

출산과 호르몬 변화, 자가면역 질환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우리 센터 치매어르신의 남녀 비율도 70여 명의 어르신 중 여자어르신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치매어르신을 돌보는 주 수발자가 70세 이상 고령의 남편인 경우가 많다.     


“감사합니다. 000 센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H보호자인데요, 복지사님, 혹시 기저귀를 주문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하려니 어디가 저렴한지도 모르겠고 기저귀는 비싸기도 해서 싼 곳이 있으면 알아봐 주세요.”

“네 보호자님 패드형 기저귀와 팬티형 주문해 드리면 될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부분 치매 어르신들은 화장실 자립이 가능하더라도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착용하는 분들이 많다. 

H어르신처럼 배변 자립이 어려운 분은 아무리 흡수력 좋은 팬티 기저귀를 착용한다고 해도 소변 한 번에 

바지까지 젖는 경우가 많다. 배변 자립이 어려운 분은 그래서 항상 패드형과 팬티형 기저귀를 착용한다.

H어르신 남편분은 혹시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자녀들에게 무시라도 당할까 봐 기저귀부터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긴다. 고령의 보호자에게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복지사 업무 중 ‘0팡 로켓배송’을 이용한 기저귀 주문이 추가되었다.     


어르신이 여벌옷이 없어 센터에 비치된 낯선 여벌옷이라도 입고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남편분의 

피드백이 온다.

“여보세요, H보호자인데요, 우리 00이 오늘 입고 온 바지가 00이 것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건가요?”

“네, 보호자님 어르신 여벌옷 얇은 게 없고 날씨도 더워 센터에 비치된 옷을 입혀드렸습니다.”

“아니, 누가 입던 옷인지도 모르고 무늬도 이상한 옷을 입히면 어떻게 합니까? 두껍더라도 00이 바지를 

입혀주세요.”

“네, 보호자님 센터에 비치된 바지는 다른 보호자분이 기증한 새 바지입니다. 어르신 더운 날씨에 

시원하시라고 입혀드렸는데 불편함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네, 앞으로는 꼭 00이 거 입혀주시고 얇은 바지는 내일 두 개정도 더 보내겠습니다.”

젊은 사람들 보다 더 살뜰하게 부인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H어르신이 왜 그렇게 ‘영감, 영감’하는지 이해가 

간다.     




‘D어르신 오늘 센터에 오는 거 완강히 거부해 결석하십니다.’

업무연락망에 D어르신 출결 관련 문자가 올라왔다. 그리고 급하게  울리는 전화벨.

“감사합니다, 000 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복지사님, D어르신 아들인데요,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병세가 위급해지셔서 지금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센터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네요, 어머니는 아버지 말만 듣는……, 

당분간 어머니 진정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     

평소 감정기복이 심하고 ‘파국’ 증상으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따귀를 때리거나 동료어르신들과 다툼이 

잦은 D어르신. 기분 좋다가도 갑자기 보이는 폭력성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의 

어르신이 등원을 거부하며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처음 D어르신이 센터에 왔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센터에 전화를 걸어 점잖은 목소리로

“우리 000 잘 좀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셨던 남편분이 생각난다. 

아기 다루 듯 D어르신을 달래고 보살피셨는데 워낙 연세가 많고 노쇠하셔 살 기운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

하신 것이다.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때리고 고집부리는 치매어르신을 모시는 일은 젊은 사람 열 명이 하기도 힘겨울 때가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벌써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모셨을 것이다. 연세가 많아도 사랑은 남아 

아침저녁에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를 선택해 보내신 남편분.   

  

얼마 후 남편분의 부고가 들려왔다.

“복지사님, 그동안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버님 장례치루고 일 처리 하느라 이제야 연락을 드리네요.”

“그러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보호자님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D어르신은 좀 어떠신가요?”

“네, 어머니는 뭘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하루 종일 멍하니 거실에 앉아 계시네요.”

“낮에 누가 돌보실 분은 계신가요?”

“네, 당분간 제 동생이 돌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좀 안정이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띠띠띠, 찰카닥!’ 허망한 보호자의 음성 뒤로 D어르신과의 영원한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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