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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3. 나이야  가라!

당신은 나의 첫사랑

신혼 때부터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지인이 있다.

남편이 너무 효자여서 어머니라면 껌벅 죽는 것도 있었지만 맞벌이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불편을 감수하고 친정어머니 모시듯 30년을 넘게 살았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시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지조 있고 깔끔한 성격에 빈틈없는 분. 그런데 몇 년 전 그런 분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30년 이상 마주 보았던 시어머니방과 부부의 방.  두 방의 문은 늘 열려 있어야 할 정도로 아들이라면 

끔찍했던 분.    그랬던 분이기에 치매가 걸리니 아들이 없이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걸핏하면 밖으로 나가 길을 잃으니 실종신고도 빈번하였다. 가족들의 직장생활,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효자 아들 때문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 시설 입소는 꿈도 꿀 수 없어 낮에만 다니시는 주간보호센터에

모시게 되었다. 이미 육십 세가 넘은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치매로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나는 요즘 왜 사는지 모르겠어. 30년 넘게 며느리로 살았던 세월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는 하나도 없는 거 같아.”

“아니, 자기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하시고 이젠 사회에서도 크게 성공하셨는데 무슨 소리세요?”

"어머니 30 넘게 모시고 살면서 부부 여행은 물론 아이들과도 오붓한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어, 젊을 때 일하느라고 잊고 살았지만 지금 내 나이쯤 되는 친구들은 아들 며느리 데리고 여행도 다니면서 부담 없이 

사는 데 난 오히려 올가미에 걸린 사슴 같아.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시고 나서는 온 가족이 어머니께 

매달리느라 자기 생활이 없고.”

“맘이 아프네요, 몇 년 있으면 다 정리하고 제주도 가서 사신다고 하시더니.”

“그러게 말이야, 근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글쎄 변도 못 가려서 기저귀 차시는 분이 주간보호센터 갈 때 기저귀 위에 거들을 입고 가시는 거 있지. 거기 가면 할아버지들 있다고  멋도 부리시고, 그 독야청청했던 

분이, 그 모습 보는데 더 실망스러운 거야.”

“어머, 망측해라! 웬일이래요. 노인네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어르신의 행동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치매는 초기단계, 중기단계, 말기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치매 초기는 발병 1~3년 정도 시점으로 가까운 기억을 잃어버려 했던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미각, 청각, 후각 등 감각 기능이 저하 돼 음식 맛이 변한다. 청력이 저하돼 텔레비전 볼륨이 커지며 낮잠 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행동이 느려지고 집안일이 서툴러지는 단계이다.     

치매 중기는 치매 발병 2~3년 혹은 10년까지로 치매 단계 중 가장 긴 기간이다. 이때는 기억력이 심하게 감퇴되고 언어능력 또한 저하돼 사용 단어가 급격히 줄어든다. 판단 능력이 떨어져 엉뚱한 소리를 하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과 계산 능력 또한 떨어진다. 시간, 날짜, 계절, 방향,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출 시 길을 잃는 경우가 많아 혼자 외출이 어렵게 된다.     

치매 말기는 치매발병 8~12년 정도 기간이다. 대부분 기억을 상실하고 일생생활을 함에 있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고 각종 합병증이 증가하며 몸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 기억과 삶을 잃어 100세 시대의 재앙이라고 하는 치매.

그러나 이 재앙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00 선생님 G어르신이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 달라고 해도 절대 알려 주면 안 됩니다. 지난번 자꾸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G어르신 첫 사랑하고 똑같이 생겼다고.”

젊었을 때 인기 꽤나 있었을 법한 G어르신은  아기처럼 귀여운 인상을 하고 맘에 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나 사회복지사에게 ‘츄파춥스’를 마구 쏜다. ‘언제 전화번호를 딸까?’ 눈을 반짝거리면서. 남녀 어르신이 함께 

있는 일반실에서는 가끔 질투와 사랑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저 사람들 부부 맞아?” 

유난히 다정하게 지내는 H어르신과 Y어르신을 보며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 어르신들의 입방아가 한창이다. 두 분은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과정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던 H어르신은 우울증을 잊은 채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영감님을 일찍 여의고 늘 외로웠던 Y어르신 또한 자녀들의 걱정과는 달리 H어르신을 만나고부터 정서가 안정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두 분은 이제 양가 자녀들이 인정한 사실 혼 관계로 잉꼬부부가 되었다.     


음성이 걸걸하고 행동도 보이시하신 C어르신은 탁구를 즐긴다.

센터에서는 탁구를 좋아하는 어르신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매주 수요일 탁구를 치러 오는 어르신들 사이에 유독 돋보이는 분은 바로 홍일점인 C어르신이다. 홍일점도 

그냥 홍일점이 아니다. 남자 어르신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큰 형님 같은 홍일점. 그런데 그렇게 보이시하던 어르신이 얼마 전부터 목걸이며 팔찌,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오며 ‘소녀소녀’하게 변했다. 

“어머, C어르신 너무 예쁘시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입고 다니세요, 아주 잘 어울리세요.”

“호호, 그래요? 이거 며칠 전에 딸이 사줘서 그냥 입어봤어.”

그런데 ‘그냥’이 아니었다. 센터에서 보란 듯이  A어르신과 팔짱을 끼고 다니시거나 머리를 쓸어 넘겨주시며 예사롭지 않은 핑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치매에 걸려 기억이 사라져 간다고 ‘사랑’의 감정까지 소멸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본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을 향한 마음이 더 커진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척했을 뿐.

저물어져 가는 황혼의 길에서 마음에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저귀 위에 보정속옷을 입었다는 지인의 시어머니. 오히려 그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니, 누가 미성년자를 직원으로 뽑았어요?”

“복지사님은 웃는 게 너무 예뻐! 아주 머리카락까지 웃네.”

아무도 모르게 커피 사탕을 손에 쥐어주기도 하며 인기 많은 G어르신이 50이 넘은 사회복지사에게 

‘츄파춥스’를 마구 쏜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 가슴깊이 물들이고~

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 가슴이 뜨거워 터지는 화산처럼 막을 수 없는 봉선화연정” 


오늘도 G어르신의 18번 ‘봉선화 연정’이 센터에 울려 퍼진다.

아직도 찾지 못한 봉선화 같은 첫사랑을 놓지 못해 부르는 노래. 절절하기까지 하다. 센터 모든 여직원이

G어르신의 첫사랑이 될 때까지 ‘봉선화연정’은 결코 꺼지지 않으리.     


‘오마나! 그런데 어르신! 댁에 할머니 계시잖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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