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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3. 나이야  가라!

찔레꽃 피고 지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빨래를 널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나도 몰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찔레꽃’ 내가 주현미도 아닌데

 ‘그으으립 습니이이이다’ 목을 한껏 꺾어 구성지게  부를 때가 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어머, 주책없게 웬 트로트!’ 하며 입을 다문다.   

  

주현미의 ‘찔레꽃’은 센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치매어르신들은 단기기억상실 증상이 있어 금방 했던 일을 잊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앞까지 왔다가 교실로 들어가는 길을 잃어 버려 멍하니 서 있다. 밥을 먹었어도, 

“나 배고파, 밥은 언제 줘”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보다는 오래된 일들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고향이나 어릴 때 가족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수구초심’여우도 죽을 때 고향 쪽으로 머리는 둔다는 말처럼 세월이 흘러 본향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이야 

오죽할까!     




어릴 때 살던 마을엔 커다란 공동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전봇대 옆엔 ‘정식이네 가게’가 있었다. 

정식이네 가게엔 없는 게 없었다. 딱지, 구슬, 눈깔사탕, 약과에 아이스께끼까지.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는 곳. 그곳엔 늘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가게 앞 넓은 마당은 구술치기나 자치기, 땅따먹기 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낮 동안 한바탕 시달린 넓은 마당이 한숨 돌리는 저녁이 되면 늦가을 쓸쓸한 바람과 함께 나타나는 손님이 있었다. ‘미친년’ 딱히 이름도 없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머리는 엉클어지고 때가 꼬질꼬질한 옷을 걸친 누가 뭐래도 ‘헤헤’ 웃기만 하는 ‘미친년’ 배는 언제나 남산만 해 있었다. 작년에 낳은 아이는 어디에 두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마을에 들어 왔는지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일 년이면 두어 번 나타나는 그 ‘미친년’은 고향을 잊지 못해 찾아왔다고 혹자는 말했다.    

  




“이거, 문 좀 열어줘요.”

“어르신 어디 가시게요?”

“나 정읍 가아 혀,  차타고 정읍 가야 혀.”

“어르신 정읍 가시려면 차타고 오래 가셔야 하니 우리 저녁 먹고 가면 어떨까요?”

“아녀, 거기 가면 엄니도 있고 다 있어서 괜찮여.”

“그래요? 거기 가면 엄니도 있고 또 누가 있어요?”

“거가면 언니도 있지.”

“어머, 그래요? 그러면 거기는 어르신 고향이에요?”

“그럼 고향이지, 마당도 아주 넓고 꽃도 많이 피고.”

“정말 멋지겠어요, 어르신 우리 교실로 가서 어르신 고향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응, 그르까?”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잊고 엄했던 아버지 이야기, 다정했던 언니 이야기를 한껏 풀어 놓는 어르신.

 그러다 기억을 잃어 희미해진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읊은 노래 한 구절.

“찔레꽃 피고 지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고향 속엔 지질이도 못 살았던 그때 그 시절도,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모르는 쓸모없는 인생도 다 묻힌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리고 팔십의 나이는 온데간데없고 철부지 어린아이만 남는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김용님 가수의 ‘나이야 가라’는 단연코 어르신이 좋아하는 노래 1위이다.

‘꿍짝꿍짝 꿍짝꿍짝’ 트롯의 구수하고 흥겨운 가락이 흘러나오면 어르신들 어깨도 덩달아 들썩들썩한다. 

노랫말에 조금 더 보태면 ‘나이아가라폭포’도 울고 갈 만큼 우렁찬 노랫소리가 센터 전체에 울려 퍼진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방’은 인지 발달에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다. 노래 가사 구구절절 얼마나 옳은 말만 하는지. 지남력과 언어인지, 정서지원에 노래방만 한 효자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주간보호센터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의 서두와 말미에 구수한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아니, 왜 이렇게 잠자는데 후끈거리고 땀이 쏟아지는지 모르겠어.”

“나봐, 나는 이 손가락 마디마디 안 쑤시는 데가 없어.”

“난 고혈압 온지가 벌써다 얘, 혈당도 높아 아무거나 먹지도 못하고……. 이게 사는 거니?”

“그러게, 그놈의 갱년기에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네.”

오십이 넘어 육십에 가까운  언니들이 만나면 어디 아프다 어디 아프다, 옆에서 지켜보면 누가 더 많이 아픈지 질병 배틀이라도 하는 줄 안다. 그러면 난 어김없이 언니들의 배틀에 찬물을 확 끼얹고야 만다.

“다 팔자가 좋아서 그래, 먹고살기 바빠 봐, 갱년기가 어디 있어? 눈 뜨면 일하러 가야하고 눈 감으면 자야하는데 갱년기 갱년기 할 시간이 없지!”

“으이그 계집애, 너도 우리 나이 돼봐! 안 그런가.”     




우리 엄마 연배의 어르신들은 애 넷은 기본이고 여섯을 넘어 아홉까지 낳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빨래는 세탁기가 밥은 밥솥이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 시대에 살지도 못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애들을 들쳐 업고서 들로 산으로 쉴 새 없이 다녔다. 봄에는 봄나물 뜯어다 팔고 가을에는 벼 이삭 주워다 밥이라도 해먹어야 했다. 바느질하다 바늘귀에 찔릴 정도로 잠 한 번 편히 잘 수 도 없는 고단한 인생이었다. 한마디로 ‘갱년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독하다는 ‘갱년기’도 물리친 어르신들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대한민국의 인구를 불리고 경제를 불린 그 기백으로 오늘도 ‘나이야 가라!’를 힘차게 부른다. 마음 앞에 나위 따위가 대수냐고 호통을 

친다. 그러니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내라 말하는 것 같다. 마치 내 귀에 캔디처럼 달콤하게 들린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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