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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24. 2023

#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앙꼬 없는 찐빵

“어르신들 오늘은 봉숭아 꽃물 들이기를 할 거예요, 양손가락 세 개씩 해드릴게요.”


여름에 피는 꽃을 알아보고 봉숭아 꽃물 들이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르신들은 봉숭아 꽃물 들이기를 하며 어릴 때 추억을 소환해 이야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유독 눈치만 살피고 있는 YH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YH어르신, 어르신도 봉숭아 물들여 드릴까요?”

YH어르신은 대답 없이 수줍은 표정을 고개만 끄덕인다.

약속대로 양손가락 세 개씩 봉숭아 꽃 빻은 것을 손톱에 올리고 꽃물이 세지 않게 묶어주었다.

그리고 일어나려는데 

“선생님, 다 열 손가락 다해줘요.” 하신다.

“어르신, 열손가락 다 해드려요?”

“네, 부탁해요, 나는 이거 처음 해봐, 하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해 봤어.”

“어르신 봉숭아물들이기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 그럼 제가 오늘 이 열 손가락 다 해드릴게요. 예쁘게.”

YH어르신은 열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내내 

“고마워요, 이게 웬 호강이야.” 하며 말한다. 

‘봉숭아 꽃물 정도가 호강이라니!’ 백반이 손톱에 스며들듯 마음이 아려왔다.   

  



“저이는 도대체 남자야, 여자야?”

“여자니까 여기에 있지.”

“생긴 걸 봐 저게 어디가 여자야?”

짧은 커트머리, 매일 같은 옷, 류머티즘으로 뒤틀린 열손가락까지. 얼핏 보면 남자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YH어르신.

키도 크고 젊었을 때 몸무게가 100kg이 나갈 정도로 거구였는데 지금은 살점 하나 없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봄이 와도 싹 날 기력이 없는 고목나무. 자칭 ‘앙꼬 없는 찐빵.’  YH어르신이다.     


“어머! YH어르신, 해바라기가 정말 멋있네요, 이렇게 알록달록 칠하니 새롭게 보여요.”

“아니, 해바라기를 노랗게 색칠해야지 저게 뭐여!”

영락없이 YH어르신을 남자라고 흉보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들린다.

“어르신, 해바라기가 노랗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어요, 저는 YH어르신 해바라기 본 적 있어요, 노을이 질 때 해바라기 색이 이렇던 걸요.”

“뭐 그렇기도 하겠네.”

“YH 어르신 알록달록 가을처럼 아주 잘 칠하셨어요.”

“잘 칠하면 뭐 해, 앙꼬 없는 찐빵인걸.”




‘앙꼬 없는 찐빵’ YH 어르신은 늘 자신을 가리켜 ‘앙꼬 없는 찐빵’이라 했다.      

‘앙꼬 없는 찐빵’이 늘 하던 것처럼 햇빛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본다. 주변이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YH어르신은 책 읽기나 신문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이는 글씨도 모르면서 뭐 만날 책이야.”

“글씨를 몰라?, 아니 글씨 모르는 사람도 있나?”

“아닐걸 글씨를 아니까 저렇게 만날 책을 읽고 앉아있지, 모르면 재미가 있나?”

어르신의 책 읽기는 멈추지 않고 동료 어르신들의 의심도 계속된다.     


“어르신 신문 보세요? 들어가셔서 노래방 하시죠.”

“난, 여기서 그냥 이거 보는 게 더 좋아.”

“어르신, 어르신은 만날 책이나 신문을 읽고 계시네요, 재미있으세요?”

“그럼 재미있지, 저런 노래방보다는......”

“어르신은 왜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하세요?”

“그거야 어릴 때 아버지가 공부를 안 시켜서 내가 한이 돼서 그래.”

“어르신은 공부하고 싶으셨는데 왜 아버님이 공부를 안 시키셨어요?”

“내가 큰딸이고 동생들이 많으니까 돈 벌라고 공부를 안 시켰지, 다 내가 벌어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그랬지.”

     

‘앙꼬 없는 찐빵’은 늘 배움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이다. 돈 벌어 동생들 가르치느라 여자로서 멋 부릴 

시간도 없었다. 머리는 언제나 짧게 자르고 옷은 늘 같은 걸로 입고 살았다. 가정을 일구고 딸도 낳고 살만

하게 되었어도  머리는 늘 짧고 옷은 늘 같은 것만 고집한다. 

뭘 해도 어르신 스스로 배우지 못한 ‘앙꼬 없는 찐빵’이기에.    


 



“복지사님, 이번 생신잔치에 YH어르신 따님이 과일 준비해 주신대요, 따님께 전화해서 생신잔치 시간 공지해 드리세요.”

“네.”


매달 세 번째 수요일은 생신잔치가 있는 날이다. 생신 맞은 어르신들을 위해 생신 상을 차리고 동료어르신의 축사와 생일 맞은 어르신의 답사도 준비한다. 종사자 축하 공연과 동료어르신 축가도 준비한다. 생신잔치 축사와 답사, 축가는 특정 어르신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어르신 전체 순서를 정해 진행한다.     


“팀장님, 이번 생신잔치 축사는 2층 어르신이 하기로 했어요, 답사는 어느 분이 좋을까요?”

“글쎄요, 하실 만한 분이......”

“이번 답사는 YH어르신이 하면 어떨까요?”

“YH어르신이요? 그분은 여기 몇 년 다녔어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글씨는 아실지......”

“만날 책 읽으시니 글씨를 알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네, 어쨌든 복지사님이 어르신께 한 번 말해 봐요.”     


축사와 답사는 미리 준비되어 있다. 어르신은 당일에 동료어르신들 앞에서 읽기만 하면 된다. 왠지 마음속에 YH어르신이 답사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YH어르신, 이번 생신 잔치에 생신 맞은 어르신들 중에서 답사하셔야 하는데 어르신이 해주시겠어요?”

어르신은 긴장된 표정으로 류머티즘으로 뒤틀린 손목을 심하게  흔들며 나를 한번 쳐다본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까짓 거 해보지 뭐, 할게요.”

“네, 어르신 시작 전에 같이 한번 읽어봐요.”    

 

드디어 생신잔치 날이 되었다. 

동료 어르신의 축사가 끝나고 답사를 하기 위해 YH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머티즘으로 뒤틀린 손은 파킨슨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르신이 긴장하니 머리까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소 어르신이 글씨도 모르면서 만날 책만 본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어르신들의 눈빛이 일제히 YH어르신께 집중되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에 쟁쟁할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읽어 나가는 YH어르신의 답사는 수근 거리는 몇몇 어르신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는 답사에 오히려 동료어르신들은 감동을 받은 듯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리고 우렁찬 박수 소리. ‘앙꼬 없는 찐빵’에 달콤한 앙꼬가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살 좀 빼! 젊은 사람이 건강을 생각해야지.”

“아이, 어르신 저도 살 빼고 싶어요, 어디 살 빼기가 쉽나요?”

제법 덩치가 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YH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아, 왜 못 빼 의지만 있으면 하지, 나는 100kg이 넘었었는데 이렇게 뺐는데.”

‘앙꼬가 가득 찬 찐빵’은 이제 더 이상 구석진 곳에서 혼자 앉아 있지 않는다. 어르신들 중심에서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낸다.


“저이는 남자여, 여자여?”

했던 말을 잊고 또 하는 어르신이 YH어르신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런 지미랄, 내가 왜 남자야? 어디 봐서 남자야? 여자니까 여기 있지!”     

의지만 있다면 100kg의 살도 뺄 수 있는 어르신. 의지만 있다면  나이 팔십에 한글도 떼는 어르신.

드디어 치매전담실에 ‘앙꼬 있는 찐빵’ YH의 빛나는 반란이 시작되었다.              

이전 15화 #3. 나이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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