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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Dec 05. 2023

#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소원이 하나 있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어르신 신체 인지 기능에 따라 1~5등급, 인지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 어르신은 신체 인지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기 때문에 일상생활 수행에 있어 자립이 불가능하다. 생활전반에 걸쳐 타인의 도움이 꼭 필요한 단계이다.      

또 하나 치매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경증치매 어르신이 속한 ‘인지등급’이다. 예전에는 인지 기능보다는 신체기능을 우선시해 ‘우선거동’이면 경증치매라 할지라도 등급을 받지 못해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2018년부터 신체기능이 양호하더라도 치매초기 단계로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인지등급’을 주고 급여서비스 제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인지등급 어르신들은 이 혜택으로 주야간 보호센터를 하루 8시간 이상 월 12회 이용할 수 있으며 인지 기능 보조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단, 인지기능 어르신들은 주야간보호센터만 이용할 수 있고 방문요양은 이용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 K어르신 보호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저희 어머니 내일부터 차량을 이용해 센터에 가야 할 것 같은 데 혹시 집 앞 말고 다른 곳에서 이용할 수 있나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어르신 댁 앞에서 송영서비스받으시는 건데, 다른 장소를 이용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센터 차량이 ‘000 데이케어센터’라고 쓰여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볼까 봐 부담되나 봐요.”

“네, 그러시군요. 그럼 어르신 어디서 송영서비스 해드리면 될까요?”

“어머니 사시는 집 앞 아파트 아래 슈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럼 송영 일정 잡아서 전화드리겠습니다.”     


K어르신은 특이하게 사위 분이 센터로 상담을 왔다. 사위가 볼 때는 치매증상이 있는 거 같은데 다른 가족들은 받아 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사위 분의 현명하고 발 빠른 대처로 K어르신은 치매를 조기 발견하게 되었다. 치매판정을 받고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신체 인지기능 유지와 향상을 위해 알맞은 교육과 기능 훈련을 받게 되었으니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치매라 하더라도 인지등급을 받은 어르신은 일상생활의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을 잊고 목적 없이 배회하거나 했던 말을 반복하는 증상을 보인다. K어르신은 특히 시간 인지가 어려워 귀가 시간이 되면 고도의 불안감으로 배회한다.      

치매어르신들이 단계별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시간, 날짜 계절, 장소,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남력 장애이다.

지남력은 상실은 시간-> 장소->사람 순으로 나타난다.

섬망이나 치매증상으로 지남력 장애가 나타나지만 섬망 증상이 호전되면 지남력은 사람->장소->시간 순서로 회복되기도 한다. 초기 지남력 장애는 비약물적 요법으로 호전될 수 있다.

밤, 낮을 알 수 있도록 창문을 열두는 것, 친숙한 환경에서 평소 사용하던 물건을 가까이 두는 것, 날짜와 상황을 알려 주어 현재 상황을 인지하게 하는 것, 주기적으로 날짜와 장소 등을 알려주는 것, 친숙한 사람들의 사진, 달력이나 시계를 가까이 두는 방법 등이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프로그램 시작 전 어르신들이 날짜와 요일 날씨 등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상호작용한다. 매월 1일 이면 달력수업으로 계절과 시간 요일 등을 알고 달력을 완성하는 인지활동을 제공한다.     




“어르신 오늘은 9월 1일이에요, 복지사와 함께 9월 달력을 만들어 볼 거예요. 

9월 8일은 백로예요. 백로부터 밤이슬이 하얀 서리로 변할 정도로 날씨가 서늘해져요........ 건강을 위해서는 손발을 따듯하게 해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과일 중에는 포도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달력 수업을 통해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계절에 맞는 다양한 경험을 나눈다. 

“어르신들 9월에는 또 무엇이 있지요?”

“추석이 있지!”

“네 맞아요. 추석이 있어요, 음력 8월 15일은 추석 이에요, 추석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추석엔 송편 먹지.”

“네, 맞아요. 가족들과 모여 송편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갖지요.”

“달맞이도 하지요.”

“네, 어르신 추석은 음력 15일로 보름달이 뜨지요, 옛날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대요.”

“그랬지 소원도 빌고 강강술래도 하고.”

“네, 맞아요, 우리 어르신들의 소원을 뭐가 있을까요?”     


“이 나이에 소원은 무슨 소원, 그저 식구들 건강하면 좋지.”

“나는 아직 딸이 결혼을 안 해서 딸이 시집가는 게 소원이야.”

“어르신 따님이 몇 살인데요?”

“벌써 마흔이 넘었어, 사서과 나와서 도서관에서 근무하는데 벌써 아파트도 사놓고 했어도 결혼은 아예 할 생각이 없나 봐.”

“그래요? 우리 아들도 아직 장가 안 갔는데.”

“그래요, 언니 아들은 몇 살인데?”

“우리 아들도 사십이 훨씬 넘었지, 사업하고 있는데.”

“아, 그래요.”

“와! 그럼 어르신 두 분이 사돈 맺으면 되겠네요.”

“아이, 우리 얘가 사십이 넘어서 애나 낳을 수 있는지 모르지.”

“아이, 요즘은 다들 건강해서 사십 넘어도 괜찮아요.”

O어르신은 왠지 B어르신 딸에게 관심이 있는 눈치다.

“어르신 두 분 사돈 되길 바랄게요.”


“나도 소원이 하나 있긴 해.”

평소 조용한 성격의 Y어르신이 손을 들고 말한다.

“Y어르신 소원은 뭘까요?”

“응, 나는 더 늦기 전에 애들하고 유럽여행 가보는 거야. 지금은 다리도 아프고 그렇지만.......”

“와! 어르신 정말 멋진 소원이에요, 이번 추석에 어르신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Y어르신은 구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혼자 은행일도 보시고 미대 출신답게 미술시간에 그림도 무척 잘 그린다. 큰 키에 옷도 얼마나 멋스럽게 입는지 시니어 모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인지게임 시간에 골프를 멋지게 치시기도 한다. 어르신 말에 의하면 딱 하루 뉴질랜드 골프 학교에서 쳐본 실력이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인지는 총명한데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행동이 점점 느려지며 조금만 활동해도 힘이 들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어르신, 조금만 더 드세요, 이렇게 조금 드시면 기운 없어 아무것도 못하세요.”

“아이고, 입맛이 있어야 먹지, 도통 입맛이 없는 걸.”

“어르신, 자녀들과 유럽여행 가려면 체력이 튼튼해 야해요.”

“그렇지 않아도 딸이 만날 나더러 그래, ‘엄마, 유럽여행은 많이 걸어야 해, 그러니까  뭐든 많이 먹어.’하고  말이야.”

“맞아요, 어르신, 그러니까 식사 조금만 더 드셔보세요.”

“그래, 그래야지.”

유럽여행을 위한 어르신의 힘겨운 숟가락질이 시작된다.    

  

주간보호센터는 어르신들 돌봄을 위해 일요일과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 운영된다. 그렇다 보니 매달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그 외 종사자들의 근무를 배정하는 것이 어렵다. 토요일과 공휴일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반드시 평일 휴무일을 정해 쉬어야 하며 공휴일 근무 시 대체 공휴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근무 표를 매달 새롭게 짜야한다. 맞벌이 등으로 어르신을 돌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토요일과 공휴일에도 운영하지만 치매 어르신 돌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호자가 토요일과 공휴일에 집에서 쉰다고 해도 어르신들은 센터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 교사였을 때 하루 8시간 이상 어린이집에 맡겨지는 아이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자아실현이나 경제적인 풍요로움 등 목적 있는 삶으로 바쁜 건 좋다. 

그러나 아이들마다 딱 그 시기가 아니면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엄마 품을 찾는다. 바쁜 일과를 마친 부모들은 지칠 대로 지쳐 퇴근 후 아이와 애착관계를 형성할 시간도 없이 먹고 자기 바쁘다. 모처럼 쉬는 날은 상호작용 방법도 모르고 몸도 지치니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 놀이공원이나 체험학습을 한다. 

그런 부모들께 차라리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자연을 탐색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맞벌이도 하지 않는 일부 부모들은 어떤가? 아침 일찍 기저귀도 갈지 않고 아이를 둘러업고 어린이집에 던 지 듯 맡기고 간다. 20대처럼 꾸미고 등산 간다, 카페를 간다. 그리고 저녁 늦게 아이를 찾으러 온다. 

하루 종일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는 친구들 물어뜯거나 소리를 지르며 말 못 하는 마음을 아프다고 표현한다.      


“얘, 맞벌이는 무슨 맞벌이니? 애는 그저 지 엄마가 키워야지, 수백 벌 거 아니면 차라리 알뜰하게 살림하며 애나 키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맞벌이를 하겠다며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부탁할 때마다 듣는 소리였다. 결국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반듯하게 성장 한 걸 볼 때 친정엄마 말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와 아이의 애착이 형성되고 충분한 사랑을 받는 다면 지금 유행하는 ‘금쪽상담소’, ‘금쪽같은 내 새끼’ 등 문제아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치매전담 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린이집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치매가족의 어려움은 알지만 공휴일과 토요일 등 어르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공원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어르신들은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람의 수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상황 앞에 시간이 허락되는 한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이번 추석엔 어르신들이 명절 연휴를 오롯이 가족들과 보냈으면 좋겠다. 송편도 빚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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