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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Dec 05. 2023

#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Happy Birthday  To   You

“까똑”

“까똑”

“까똑”........

자정이 되자마자 울리는 ‘까똑’ 소리.

매년 생일이 되면 받는 ‘생일 축하해!’ 란 말.


육 남매 형제와 그 배우자 그리고 엄마까지, 아이들을 제외하고라도 한 해 생일축하만 열 번 이상 한다. 

형제들 모두 팔팔하게 젊었을 때는 누구 생일이면 대가족이 모여 축하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생일의 의미를 놓고 팽팽하게 논쟁을 펼치는 양대 산맥은 작은언니와 큰형부이다. 작은언니는 생일에 목숨 걸 정도로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형부는

"매번 돌아오는 생일 뭐 이렇게 유난이냐?" 

라며 생일을 너무 터부시 한다. 나는 그 산맥 중 형부 산맥을 타는 사람이었다. ‘적당한’ 것을 선호하는 나는 생일에 유난스러운 작은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얘들아, 일어나 봐, 아빠가 안 왔어, 연락도 안 되고, 카톡 보내도 답장도 없어.”

주말이 되면 홍성에 있는 농장으로 나무를 심는다, 감자를 심는다, 하며 내려갔던 남편.

부활절을 몇 주 앞두고 아이들과 나는 부활절 칸타타 연습으로 바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봄비 소식에 아직 만개하지 않은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던 날 새벽 남편은 홍성에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아빠, 부활절 끝나고 우리 같이 가자.”

“안 돼, 멧돼지 때문에 탱자나무 울타리도 쳐야 하고 할 일이 많아.”

“자기,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가. 혼자 하면 힘들잖아, 뭐가 그리 급해, 비도 온다는데!”

“아, 이 사람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데 왜 자꾸 그래, 그냥 나 혼자 다녀올게.”

평소에 화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래, 가서 고생 진탕 하다 와라!’ 별일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남편이 미워질 정도였다.      

주말에 농장에 갔다가 도로가 막히면 새벽에라도 도착해 조용히 거실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도 의례 

와 있겠거니 생각하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주일 이른 새벽 뭔지 모를 서늘한 기운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어나갔다. 텅 빈 거실. 남편은 없었다.


뭘 해도 연락이 닿지 않은 남편을 찾기 위해 홍성 경찰서와 소방서에 농장 주소를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후 갑작스레 심장이 멈춰버린 남편을 찾았고 우리는 영원한 이별을 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좀 더 사랑해 주지 못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앞에 죄인 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았다. 

     



“고모, 어머니 연락이 계속 안 되네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별일 없어요, 아마 밭에 있어서 전화 못 받았을 거예요.”

“그래요, 비가 많이 와서 별일 없나 며칠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어디 아프신가 걱정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괜찮은데, 언니가 지금 위독해요.”

“네? 큰고모가 왜요?”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져서 지금 삼 일째 의식불명이에요.”

“왜요? 왜요? 왜 이제 말했어요.”

큰 시누이의 소식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지는 가슴을 잡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 갑작스러운 큰일을 겪으면서 사람이 산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잠드는 순간 매일 아침 눈뜨고 일어나는 일이 놀라운 기적임을 알았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매일 셋째 주 수요일 생신잔치를 한다.

생신잔치를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하지만 매번 생신잔치 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생신 답사가 제일 감동적이다. 입사해 처음 맞은 생신잔치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어, 이봐요, 우리 집, 00 아파트 몇 시에 차 있어?”

“네 어르신 4시 30분에 차 맞춰놨어요.”

“그래? 00 아파트 000동 0호 그리로 해놨어?”

“네 어르신 딱 맞춰놨어요.”

아침부터 집에 가는 차를 수시로 확인하는 W어르신.


늘 커피 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가 센터 구석구석에 뱉어 놓는 어르신은 망상이 심하다.     

“이거 봐, 빨리 차 불러. 나 지금 집에 가봐야 돼.”

“왜요? 어르신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말이야 마누라가 나를 여기 보내놓고 지 친정 사내놈들 잔뜩 불러 하루종일 술 먹고 뭐 하고 그래도 

되는 거야?”

“아, 어르신 할머니 친척분이 오셨군요.”

“친척은 뭐 친척이야! 그것들 붙어서 뭐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아, 빨리 집에 가야 돼.”

가끔 업무상 2층에 내려가면 내 얼굴에 커피사탕 침을 폭포수처럼 뿜어대며 흥분해서 말한다. 

     

“머리 아파! 머리 아파 죽겠어.”

“어르신 머리 아프세요?”

“그래, 어제 말이야 어떤 놈들이 내가 자고 있는데 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리쳐 머리가 이렇게 아픈 거야.”

“누가요? 누가 어르신을 때려요?”

“나도 모르지 어떤 놈들인지.”

어르신은 하루종일 망상으로 시달리며 이리저리 배회한다.     




“7월 생신잔치 답사는 W어르신 하면 되겠네요.”

“복지사님, W어르신 정말 답사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보고 읽는 건데 W어르신이 할 수 있지요.”

W어르신에게 생신 답사를 부탁하자는 2층 복지사님 말에 생신잔치 담당자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생신잔치 당일. W어르신의 생신답사 순서가 되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어르신은 생신답사를 다 읽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어르신의 반응에 모두들 눈시울을 적시며 

숙연해졌다.     


“그냥 아프지 말고 자다가 죽는 게 축복이지.”

“그래, 오래 사는 거 다 쓸데없어, 살 만큼 살다가 아깝다 생각할 때 죽는 게 나아.”

“나 같은 사람 오래 살아 뭘 해. 혼자 뭘 할 수나 있나,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죽어야 하는데.......”

어르신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삶에 미련도 없고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죽기를 소망하는 줄 알았다.

매일 망상에 시달려 두통을 호소하는 W어르신은 더 당연히.


그런데 어르신이 생신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꺼이꺼이 울고 있다.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 감사하다’고 말한다.  치매로 죽어가는 삶이 축복이라고.     


 



“까똑.”

“까똑.”

“까똑.”........

자정이 되자마자 울리는 ‘까똑’ 소리.

“형부 생신 축하드려요.”

“매형 생신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고모부 꽃길만 걸으세요.^^”

올해도 변함없이 형부의 생일이 되었다.     


“까똑.”

“모두 생일날 축하해 주니 고맙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뭐 그리 생일이 중요하겠냐만 서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아가는 시초이니 의미 있는 하루가 되는군요. 봄소식에 환절기 건강들 잘 챙기시고 가족들 모두 파이팅이요.”

생신 맞은 형부의 답사가 감동적이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치고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 발에 밟히며 살아가는 작은 개미조차 일을 하고 알을 낳고 종족을 지키며 살아간다.

들에 핀 보잘것없는 들풀도 가을이 되면 씨를 털어 후세를 남긴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물며 사람이랴.


요즘  매스컴에서 연일 자살 소식이 들린다. 삶의 현장에서 힘겨워하던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다. 악은 반드시 드러난다.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고난 앞에 인내하면 반드시 보응해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창 시절 나는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다.

생계를 위해 늘 바빴던 엄마, 연좌제로 인해 평생 제대로 된 직장 한번 못 잡고 한량으로 지냈던 아버지. 

늘 술에 취해 세상을 원망하며 부모를 원망했다. 처가댁에서 땅 팔아 산 팔아 사업자금을 대주어도 사기를 

당해 망하거나 흥청망청 거리다 망하였다. 그러면서도 잘난 자신을 떠받들어주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술에 바람에 폭력에. 


그런 아버지는 유독 나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성난 황소를 잠재우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매일 유서를 썼다. 책상 서랍이 꽉 찰 정도로. 성난 황소가 제일 사랑하는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나는 52세다. 아직까지 살아있다. 그리고 삶의 끝에서  매일 하루 기억만 품고 사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살아있음에 감사한 하루하루이다. 왜 하나님께서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은 나에게 아침햇살을 보내 주셔서 매일 삶으로 이끌어내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아침마다 새 생명을 부여받는 기적의 사람들이다. 

매일 부활하는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 “Happy Birthda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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