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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25. 2023

#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원스텝 투스텝

“선생님, 나 미용실 오픈해요.”

“정말요? 벌써 미용실 오픈이라니 대단한걸요! 축하해요.”     

6개월 전 미용자격증을 취득한 옛 직장 동료의 개업소식이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몇 년 간 미국에서 살다 온 00 선생님은 헤어서비스 값이 비싼 미국 생활환경 덕에 

셀프 미용을 하기 시작했고 그 콘텐츠로 유튜버가 되었다. 한국에 귀국 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미용자격을 취득하고 오전에 미용실 스텝으로 실무를 익히고 오후에는 어린이집에서 연장반 교사로 일했다. 늘 열정적으로 살고 헤어컷이나 헤어 펌 솜씨도 남달랐기에 조기 미용실 개업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선생님, 잘 지내요?”

“네, 잘 지내시죠? 미용실은 손님 많아요?”

“아직은 처음이니까 욕심 없어요, 근데 나 고민이 생겼어요.”

“무슨 고민이요?”

“아니, 친한 동생이 얼마 전 내가 미용실 차렸다니까 친정 엄마가 여기 와서 좀 도와주면 안 되냐고 하네요.”

“아, 그 어머님이 미용을 잘하시나 봐요?”

“아주 잘하시는 분이죠, 강남에서 미용실 2개나 오픈해서 돈도 많이 벌고 다니는 교회가 꽤 큰데 교인들 미용 교육 시켜서 자원봉사 다니고 그랬죠.”

“그럼 오셔서 도와주면 선생님도 좋겠네요.”

“머리는 아직도 기가 막히게 하시지, 근데 치매시라....... 

동생 말로는 버스 타고 여기 오면 내가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면 될 거라고 하는데 오시다가 중간에 내리거나 해서 노인네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겠네요, 누가 모시고 오지 않는 한 위험하지요.”

“그죠? 아무래도 위험하겠지요?”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 된 중등도 치매 어르신은  최근의 발생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며, 과거에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만 기억하게 된다. 젊었을 때 미용실을 오래 했던 어르신은 치매에 걸리고 나서도 과거에 반복적으로 했던 일을 능숙하게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어르신이 하도 고집을 부려 남편분과 한두 번 와서 미용실 일을 도와주었다. 그 덕에 선생님은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지만 방금 헤어컷 한 손님의 머리를 또 자르려고 해 큰일 이 날 뻔했다고 한다. 그 일 이후 어르신은 더 이상 가위를 들 수 없었다.   



  

매주 금요일 웃음치료가 있다. 개그 본능이 뛰어난 웃음치료 강사의 입담에 어르신들은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뿐 아니라 장고나 신나는 트로트 음악 등으로 어르신들 신체활동을 유도한다.    

 

“L어르신 식사 하셨으니 우리 레드코드 세 바퀴만 걸을까요?”

“아녀, 나 못해. 허리고 아프고 무릎도 아파서 아무것도 못해.”

“어르신, 자꾸 몸을 움직여 줘야 근육이 굳지 않아요. 자꾸 움직이지 않으면 더 움직이기 힘들어지세요.”

“아이고, 일 없어. 못해.”

평소 허리, 무릎 팔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신체활동을 완강히 거부하시는 어르신.     


‘덩기덕 쿵덕 덩기덕 쿵덕’ 웃음치료 선생님의 장고 연주가 시작되면 L어르신의 스텝이 시작된다.  

맨발로 뛰어나온 어르신은 평소 절뚝거리며 잘 걷지 못하던 걸음이 재빨라지고 장고가락에 맞춰 버선발을 내딛으며 촘촘히 걷는 듯 날아가며 춤을 춘다. 


L어르신이 어깨를 들썩거리고 손목을 살랑거리며 스텝을 밟을 때면 조지훈의 승무가 생각난다.    


      

           승무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을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로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어르신 춤사위가 장난 아닐걸요,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목선이랑 어깨선이랑 한발 한발 내딛는 발 모양까지.”

“몰랐어요? 어르신 한국무용 전공했잖아요.”

“아, 그래요? 어쩐지!”     



신나게 춤을 추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절뚝거리며 화장실을 가는 L어르신.

“어머, L어르신 어쩜 그렇게 춤을 아름답게 추세요?”

“내가 언제 춤을 췄다고 그래,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사방군데가 다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겠는데.”

“.........”

잊고 추고 잊고 추고 또 잊어도  당신은 춤 속에서 가장 빛나는 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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