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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23. 2023

#4.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지팡이쯤이야

‘O어르신 지팡이 놓고 가셨대요, 내일 꼭 챙겨주세요.’

O어르신 지팡이 문제로 또 업무연락이 올라왔다.


“아휴, 또 2층 어르신 드렸나 보네요.”

“왜 자꾸 O어르신은 지팡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치매어르신들 대부분은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자립이 가능한 어르신이라고 할지라도 어지럼증이 생기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 지팡이도 가지각색이다. 온통 꽃무늬로 장식된 지팡이, 손잡이가 멋스러운 지팡이, 구불구불 산신령 지팡이까지 어르신들 개성에 맞는 지팡이가 등원하는 시간이면 교실 모퉁이 지팡이 꽂이에 빼곡히 꽂힌다.  


    



어르신들이 수시로  깜박깜박 잊기도 하고  미각을 잃어 음식 맛이 달라져도 자세히 살피지 않는 한 치매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치매 조기 발견이 어려워 중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자주 찾아뵙고 작은 변화라도 인지하는 것이 

치매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 일단 치매가 발병되면 치료나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치매를 조기 발견해 증상을 늦추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치매를 진단받으신 어르신들은 초기에 심한 우울증을 겪는다. 치매를 절대  인정하지 못하니 맘도 편하지 않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원망이나 타인에 대한 원망이 쌓이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존감이 떨어지고 매사에 자신감을 잃는다. 

주간보호센터에 와서도 ‘나는 여기 올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기 모두 이상한 사람들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동료어르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주간보호센터에 있는 어르신은 인지등급부터 상황에 따라 2등급까지 치매 정도가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은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치매 초기 단계 어르신들이 센터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정서적 지원이 중요하다. 작은 일에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주간보호센터는 치매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하고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어르신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가정에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그 효과에 대하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르신의 센터 적응은 가족의 지지도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O어르신이 처음에 센터에 입소했을 때 심한 우울증이 있었다.

젊을 때 자녀들 뒷바라지 열심히 하고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총명했던 분이었기에 치매로 인한 상실감은 

어르신과 자녀들 모두를 괴롭게 했다. 센터에서도 동료 어르신이 하는 행동이 모두 이상하고 못마땅하니 

나가는 말이 날카로웠다.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거나 울기도 하며

“나한테 도대체 왜들 그래?” 

원망 섞인 말을 반복했다.


요양보호사선생님들은 어르신의 적응을 위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어르신의 작은 성취에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이 등 하원하는 시간에 밝은 목소리와 웃는 얼굴로 반갑게 어르신을 맞이하거나 배웅했다. 가정에서 자녀분들은 예쁜 지팡이도 사드리고 센터에서 경험하는 일들과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O어르신은 신입 어르신들의 멘토가 되었다.

“이리 와 봐요, 내가 화장실 알려 줄게.”

“뭐? 변을 며칠 째 못 봤어요? 내가 먹는 유산균이 있는데…….”

“허리가 아파요? 저기 잘하는 한의원 있는데 내가 알려줄게요.”

센터의 규칙이나 변비에 좋은 유산균, 치료 잘하는 한의원까지 두루두루 챙긴다. 금요일 웃음치료 시간이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와 덩실덩실 신나게 춤을 춘다. 늘 밝고 친절한 어르신 주변엔 사람이 많다. 

이제 어르신은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다.      



"O어르신, 왜 자꾸 2층 어르신께 지팡이를 주세요? 집에 갈 때 자꾸 잃어버리시잖아요.”

“아니 저 할머니가 잘 걷지도 못하는데 지팡이가 없잖아, 나는 조금 잘 걷고 또 금방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니까 쓰라고 줬지.”

“어르신 00 어르신은 선생님들이 안전하게 잘 모시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어르신도 어지러워 넘어질 수 있으니까 앞으로 지팡이 잘 챙기셔요.”

“나는 괜찮아, 그깟 지팡이 또 사면되지 저 양반이 나보다 더 지팡이가 필요하니까 2층까지만 빌려주고 꼭 챙길게요.”     



“나 이거 집에 가져가서 한 번 더 할 거야.”

“나 먼저 해야지, 이리 내요.”

미술시간이나 인지게임 시간에 늘 ‘나 먼저’를 외치며 ‘자기 것 만’ 챙기기 바빴던 어르신. 뭐든 욕심껏 가져야 직성이 풀렸던 어르신이 이제 동료 어르신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었다.      

가족의 따뜻한 지지와 주간보호센터 종사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O어르신의 슬기로운 치매생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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