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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08. 2023

#1. 인생은  꽈배기

누구세요?

“아휴 치매만 안 걸리면 좋겠어.”

중년 정도 나이가 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졌으나 길어진 수명만큼 

치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나이, 재력,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 올 수 

있기에 100세 시대의 재앙으로까지 불리고 있을 정도이다. 중앙치매 센터의 추산으로 2023년 국내 치매 

인구는 90만 명을 넘었고 내년에는 치매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어디 뒀더라?’

얼마 전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다. 차 수리를 맡기고 며칠간 차를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신분증이 필요했다. 당연히 가방 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출근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급하게 필요한 것이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갔다. 

‘음, 지난주에 교회 갈 때 지갑 가지고 갔지?’ 

하고 성경 가방을 뒤져보았다. 없었다. 다음 핸드백, 서랍 속, 주머니 …….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고 점심시간은 끝나갔다. 발을 동동거리며 찾던 중 다행히 겨울에 들고 다니던 가방 안에서 찾긴 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한심하다.

집에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를 잊어 들어가지 못할 뻔한 적도 많다. 전날 주차해 놓은 차를 찾지 못해 

당황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누구 말대로 핸드폰을 하면서 핸드폰 없어졌다고 동네방네 찾아다니는 꼴은 아직 아니지만. 

‘혹시 치매가 아닐까? 검사를 해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치매의 초기증상은 ‘기억을 잃는 것’이다.    

  



“집에 가야 혀!”

“어르신 무슨 일로 집에 가셔요?”

“우리 엄니, 밥 줘야 혀.”

“내 딸 좀 찾아줘, 내 딸이 나가서 안 들어와.”

“따님이요?”

“그래, 어디 갔는지도 모릉께 언능 지팡이 줘 찾으러 가게.”

평균 연령 팔십 세.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집에 가야 한다고, 집 나간 딸을 찾는다고 흥분하시는 어르신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땐 어떤 설명도 진실도 필요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에요, 어르신, 어르신 어머님은 이미 하늘나라 가셨어요.’ 

‘잃어버린 딸은 없답니다.’

라고 진실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절대 금물! 불안과 흥분의 도가니인 어르신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은 그들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는 것뿐. 나도 그들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어르신 어머님 식사 잘하고 계시데요, 어르신도 밥 맛있게 드시고 오래요.”


“어르신 우리가 따님 찾을 수 있게 다 조치해 놨어요, 경찰서랑 소방서에 다 연락해 놓아서 지금 사람들이 찾고 있어요.”

“그려요?” 

“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선생님하고 재미난 게임을 하셔요.”

“그래요, 꼭 찾아줘요.”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평안함이 찾아왔다. 

공감은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만이 하는 게 아니다. 같은 치매 어르신들끼리의 뜨거운 공감과 위로도 

빼놓을 수 없다. 어르신들끼리의 공감과 위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할 만큼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한다.



“언니, 애들이 어디 갔는지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

유난히 아이들에 대한 기억에 집착하는 S어르신이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한다.

그때 슬링 운동을 하던 J 어르신이 하던 운동을 멈추고 벌떡 일어난다. 그러곤 S어르신의 두 손을 꼭 잡고 

“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애들이 없어졌어.”

“뭐! 애가 없어졌어? 어머 어쩌면 좋냐. 어쩌면 좋아, 가만있어 봐, 내가 연락해 볼게.”

하며 핸드폰을 꺼내 든다. 

“여보세요, 나야 나. 여기 애가 없어졌대, 좀 찾아줘!” 

어르신 핸드폰에 뜬 전화번호는 000 보험회사.

전화를 이내 끊더니 S어르신의 등을 감싸 안으며 안타깝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신다.

“얘 어떡하면 좋냐, 애가 없어져서, 아이고, 아이고”

두 분은 그렇게 붙잡고 우신다.

곧 기억은 사라지고 아이를 찾으신 양 두 손 꼭 잡고 교실로 들어가 이야기꽃을 피운다. 

치매를 앓고 있으나 친구이며 동료의 공감과 위로가 다른 어떤 거 보다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부부가 있다. 그 부부의 행복지수는 100%, 금방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늘 새롭게 느껴져  짜증 나거나 싸울 일이 없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앞세우신 어르신이 있다.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다른 자녀보다 정이 각별했다. 그 아들이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존재를 기억 못 한다. 그래서 오늘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계신다.      



치매 단계는 총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 증상은 단기 기억상실이다. 음식을 조리하다가 불 끄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예전 기억은 생각나지만, 최근에 있었던 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중요한 약속을 자꾸 잊는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질문을 되풀이한다. 대화 중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더듬거린다. 다음은 2단계 중기치매 증상이다. 치매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단계로 일상생활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지내기 힘들다. 예를 들어 돈 계산이 서툴러지거나 가족 외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기억 못 하거나 혼돈하기 시작한다. 전화, TV 등 가전제품 조작을 힘들어하며 익숙한 장소임에도 길을 자주 잃어버린다. 며칠인지, 몇 시인지, 무슨 계절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3단계 말기치매는 인지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정신행동 증상과 기타 신체적 합병증이 동반되어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단계다. 의미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간단한 지시조차 따르지 못하거나 남아 있던 기억들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식사, 옷 입기, 세수하기, 대 소변보기 등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다. 심지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며 혼자 웅얼거리거나,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고 예뻐, 넌 어쩌면 그렇게 예쁘냐? 오늘은 더 예뻐 보인다!”

평소 공감 잘해주고 칭찬 잘해주기로 유명하신 J어르신이 통학버스 안의 짓궂은 오빠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쉰둘. 나이와 상관없이 예쁘다는 말은 늘 기분이 좋다.  그때 동료 어르신과 화장실을 가는 J어르신이 동료 어르신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

“이렇게 말해줘야 기분 좋아하지.”

‘헐!’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르신은 역시 전생에 그 통학버스 오빠 맞네.’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머리가 띵해진다. 금방 예쁘다는 말을 했던 그 어르신이 어느 순간

“누구세요? 누군데 여기 있어”

라고 말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어르신이 나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오늘도 뽀샤시하게 화장을 한다. 립서비스인 줄 알면서도 매일 속아 넘어가 주리라 다짐하며 빨간 립스틱을 촉촉이 눌러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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