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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0. 2023

#1. 인생은  꽈배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주간보호센터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달리 매일 자택에서 지내며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와 보호자가 협력해서 어르신의 신체, 인지기능 유지와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 주간 보호센터는 어르신을 단순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신체, 인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제공한다. 어르신들은 등급에 따라 일반실과 기억학교 (치매전담실)를 이용하는데, 치매전담실이라고

해도 인지 등급부터 치매 2등급까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다양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휴, 물 좀 그만 좀 튀겨요! 어떻게 매일 말해도 똑같아! 답답해 죽겠네!”

오늘도 꼬장꼬장 S어르신의 불평이 쏟아진다. 같은 모둠에 속해 있는 K어르신은 백날 S어르신이 앙칼지게 말해도 묵묵부답 이빨만 닦으신다. 귀가 어둡고, 인지 등급인 S어르신 보다 치매가 좀 더 심하므로 오늘 말한 걸 내일 잊어버린다. 이런 상황에 늘 속이 터지는 건 S어르신이다. 배울 만큼 배운 S어르신은 우리 센터 선생님이다. 동료 어르신들의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선생님, 저것 좀 봐요, 아까 이빨 닦았는데 저 사람 또 이빨 닦는다고 화장실 앞에 앉아 있네, 이봐요, 아까 

이 닦았잖아요! 정말 여기는 이상한 사람만 있다니까!” 

“아휴, 물 좀 흘리지 말고 먹어요, 책상이 다 젖었네.”

그러면서 절대 어르신 자신의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인 분.     


사회복지사로 전체 어르신을 관찰하고 알맞은 급여제공에 대해 고민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 제안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똑똑한 어르신들은 다가가기 쉽지 않을뿐더러 내면까지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팔짱 끼고 앉아 무표정한 얼굴에 날카로운 안경 너머로 온종일 동료 어르신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뿐. 

작은 틈도 내주지 않는 똑똑한 S어르신은 이곳에서도 늘 혼자다.      


“코로나 걸리시더니 S어르신 조금 이상해지신 거 같아요.”

“그렇죠? 제가 봐도 ‘멍’하게 앉아 계신 게 좀 이상해요”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세요."

“걱정이네요, 프로그램도 잘 참여하지 않고 ‘누워만 있겠다.’ 하고”

매사에 똑 부러지는 ‘이대 나온 여자’ S어르신의 최근 변화에 대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걱정이 한창이다.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누워있는 어르신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아 주니

“글쎄, 요즘 가슴이 답답하네요, 코로나 후유증인가…….”

“어르신 병원에서는 뭐래요?”

“거기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만 하지.”

“아, 그래요?”

“어르신, 그럼 집에서는 어떠셨어요, 집에서도 답답하세요?”

“집에서도 답답하지!”

“그럼, 엊그제 갔던 체험 농장에서는 어떠셨어요?”

“거기서는 괜찮았어요, 숲도 있고 그러니까.”

“아, 그럼 어르신 주말에 가족들과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시면 어떨까요?”

“좋지, 근데 누가 날 데려가?”

“아드님도 계시고 며느님이랑 손자도 있잖아요?”

“아구, 걔네들이 날 데려가요? 내가 집에 가면 문 탁 닫고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고 방에서 만날 나 혼자 있는데, 아들은 지 와이프 밖에 모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톡톡 쏴 붙이기나 하지.”

뜻밖에 어르신 개인 상황을 말해 속으로 짐짓 놀랐다.

“그럼 어르신, 센터에서 시간 되면 함께 산책해요.”

“그래요, 그래 주면 좋지, 고마워요.”

“병원에서는 건강하다니까 센터에서 밥도 많이 드시고 즐겁게 지내세요.”

“네.”

순한 양처럼 힘없이 말똥말똥 바라보는 눈동자에 쓸쓸한 눈물이 맺힌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보호자가 어르신들과 함께 있지 못한다.

주간보호센터 치매 어르신들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다. 

가족의 지지를 풍족하게 받는 어르신들은 센터 생활도 둥글둥글 잘한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시장통에서 

장사했던 어르신도 충분한 가족의 지지를 받으면 신체, 인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내지 않는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친다.


얼마간 시간을 내 어르신의 산책을 지원했다. 매일 눈을 맞추며 두 손을 잡아 드려 마음으로 지지를 보냈다. 다시 어르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아휴, 물 좀 그만 좀 튀겨요! 어떻게 매일 말해도 똑같아!  답답해 죽겠네!”

오랜만에 S어르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답답했던 내 속이 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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