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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0. 2023

#1. 인생은 꽈배기

가진 게 돈뿐이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J 어르신께 돈 받지 마세요!’

이른 아침 잔디(센터 내 업무 및 소통 프로그램)에 공지 하나가 떴다. 

얼마 전 입소하신 J어르신이 또 선생님들께 돈을 주신 모양이다. 

     

“어머 저분 참 잘생기셨네, 꼭 대기업 임원 같으셔.”

“혹시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신 거 아닐까요?”

센터에 어르신이 새로 오면 그분 인생의 비하인드가 사뭇 궁금하다. 치매에 걸릴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나부터도 의례 겉모습을 보고 ‘저 어르신은 정말 치매가 맞을까?’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쓸데없는 궁금증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한다. 점잖은 분위기에 희고 호감 가는 외모, 그만큼 J어르신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 그 자체였다.      


“나 어제 J어르신이 만 원 주셨어요.”

“저도 받았어요, 아기처럼 귀엽다면서 삼만 원이나 주셨어요.”

“내가 어르신 돈 받지 말라고 했는데 받았어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의 원장님 음성이 높아진다.

“우리가 안 받으려고 해도 억지로 주시는데 어쩌죠?”

“그렇지 않아도 아침마다 어르신이 보호자에게 돈 달라고 조르셔서 보호자가 아주 머리가 아프대요, 우리도 이 문제를 잘 해결해 줘야 할 텐데 참 난감하네요.”

“그러면 우리가 받은 돈을 모두 실장님께 드리고 실장님은  

그 돈을 모아서 한꺼번에 보호자에게 다시 드리면 어떨까요?

보호자에게 아침에 어르신이 받아간 돈 액수를 정확히 전달받고요.”

“그 방법도 좋겠네요, 그럼 오늘부터 어르신에게 받은 돈은 모두 실장님께 드리세요, 일주일에 30만 원 정도 받아간다니 실장님은 정확한 액수 확인하시고 주말에 보호자께 전달해 드리고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J어르신은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대형 식당 몇 개를 운영하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셨다. 젊었을 때부터 남에게 뭐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서 집 안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남들 차지였다고 한다.

이제 돈도 모을 만큼 모으고 자녀들도 출가시켜 부부가 오붓하게 여행이나 다니며 지내려 했는데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70대 초반 아침마다 조찬 회의를 할 것 같은 점잖은 어르신은 매일 센터에 오기 전 아내에게 

“나 말고 다 이상해! 나는 거기 갈 사람이 아닌데, 나 돈 줘 돈 안 주면 안가!” 

생떼를 쓴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분은 어르신 지갑에 돈을 두둑이 넣어주면서 

“오늘도 즐겁게 지내고 와요”

말하곤 어르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 돈의 얼마를 살짝 빼낸다고 한다. 

센터에 도착해 지갑을 열어본 어르신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무튼, 마누라는 믿으면 안 돼, 내 돈을 다 빼갔잖아!” 

“아휴, 피곤해, 마누라는 피곤해!”

라고 말하며 지폐 몇 장을 꺼내 돈을 또 나눠 주기 시작한다.     


대형 식당을 하며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나누기를 좋아했던 어르신. 고생고생해서 모은 돈을 맘껏 써보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을 위해 우리는 어르신이 뿌린 돈을 기쁘게 받아 어르신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자에게 몰래 돌려 드린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네,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신가?”

“네, 어르신 저는 4층 사회복지사예요, 어르신은 2층이시고요.”

“아, 맞지, 근데 나는 왜 4층 안 가요? 나도 가고 싶은데”

“어르신, 4층은 여성 전용이라 서요.”

“그렇구나, 근데 나는 원래 이런 데 올 사람이 아닌데…….”


아침마다 겸연쩍게 웃으시며 엘리베이터를 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에휴, 오늘은 또 얼마를 나눠 주시려나…….’

조금씩 센터에 적응해 가는 어르신. 마음이 활짝 열려 이제 돈 말고 예전처럼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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