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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0. 2023

#1. 인생은  꽈배기

상처엔 후시딘

누구나 전성기 시절이 있다. 

친정엄마의 리즈시절은 ‘다시다 공장’ 근무 시절이다.

사업가의 아내로 불안정한 삶을 살던 엄마는 한 달이 지나면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과 공장이라 해도 에버랜드 자유 이용권이며 선물 세트 등 대기업에서 주는 혜택에 꽤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83세가 된 지금도 엄마는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마냥 행복해한다.




치매가 찾아오면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옛날에 가졌던 직업, 상처, 좋았던 경험이나 기억,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등이다.     

“자식에 대해 입바른 소리 하는 거 아녀! 아무리 지가 잘났어도 그렇게 입바른 소리 하는 거 아녀!”

갑자기 교실이 소란스럽다. 딱히 누가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어르신 내면의 소리가 어르신을 분노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딸이 어렸을 때 가출을 해 찾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H어르신이 그때 당시 주변 사람들이 주었던 상처가 떠올라 소리소리 지르며 분노하고 있었다.      

“어르신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래, 딸자식이 없어졌는데, 그것이 집을 나가서 그 짓을 할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아, 어르신 따님이 없어졌어요?”

“그랴, 근디 내가 나가라고 했어 뭘 했어. 지가 집 나가갔고 그러고 돌아다닌 걸 내가 워째 아냐고! 

지들끼리 나를 두고 저렇게 쑥덕쑥덕 하잖여!”

“어르신 속 상하시겠어요!”

“아이고, 내가 흑흑흑……. 지그들 얼마나 잘 되나 봐, 응? 

자식 키우면서 그렇게 입바른 소리 하는 거 아녀, 아녀......”

얼마나 분한지 지팡이가 부러질 정도로 바닥에 내리치며 울기까지 한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따님 찾으실 수 있게 경찰에 연락해 놨어요.”

“응? J 읍에 연락해 놨어유?”

“네, J 읍이랑 서울에 다 연락해 놨으니까 울지 마세요.”

“그랴, 그랴, 고마워.”

“근데 어르신 J 읍에서 김밥가게 하셨다면서요?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다는데......”

“흐흐흐, 맛있긴 뭐.” 

그때서야 어르신은 부끄럽다는 듯 손사래까지 치며 밝게 웃는다.

“김밥 어떻게 싸는 거예요? 뭘 넣어야 맛있죠? 저 좀 알려주세요.”

“뭘 넣냐고? 다 넣는 게 있지.”

“그래요, 어르신 저쪽에 가서 김밥 맛있게 싸는 거 알려주세요!”

“그랴, 그랴.”

젊었을 때 지방에서 김밥 장사를 해 자식들을 키우신 어르신은 ‘김밥’을 말하자 나쁜 기억을 금방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치매 어르신 앞에서는 절대 귓속말을 하거나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망상 증세로 남을 오해하거나 의심하기 쉬우므로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은 특히 많은 상처가 있는 어르신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 미리 방지할 수 없다면 어르신이 제일 잘나가던 시절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어르신의 ‘리즈시절.’      

‘상처엔 후시딘’ 이란 광고가 생각난다. 상처받은 누군가에겐 또 다른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다. 

본인도 가족도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은 '치매.’ 어르신의 ‘리즈시절’은 ‘치매’에 후시딘과 같다. 

센터 어르신을 만나고부터 나는 친정엄마와 더 많은 대화를 한다. 엄마의 리즈시절을 내 머릿속에 전송하는 중이다. 언젠가 엄마의 손님이 될 수도 있는 ‘치매’에 대비하기 위해, 엄마의 리즈시절을 귀에 피가 나도록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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