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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08. 2023

#1. 인생은  꽈배기

똥 밟은 인생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던 동네는 서울 변두리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비행기장 끄트머리 작은 동네였다. 

마을을 드나드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1시간마다 들어오는 버스 한 대. 공장도 하나 없던 곳이었기에 마을 사람 대부분은 작은 땅이라도 있으면 뭐라도 심어 내다 팔던 도농도시였다.      

가을, 봄이 되면 가장 바쁜 사람은 ‘똥 푸는 아저씨’였다. 동네에 유일하게 ‘똥 푸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아저씨.  집집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숙성된 똥은 농사에 아주 좋은 천연 비료였다. 


“아저씨 내일은 우리 똥이요.”

“내일은 우리요.”

늦가을이나 초봄 땅이 얼기 전과 녹기 전 아저씨는 늘 바빴다. 그 덕분에 들로 산으로 뛰어놀기 좋아하던 동네 아이들은 아저씨가 퍼다 버린 똥 때문에 ‘똥 밟기’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온 동네 통틀어 극성맞기가 제일인 우리 집 다섯째 남동생은 똥독에 빠져 오기가 일상이었다. 세탁기도 없어 손빨래로 손끝이 다 닳아빠진 할머니는 “똥 밟으면 재수 좋다”라고 말하며 동생 기를 살려주셨다.      

할머니의 예견대로 똥독에 빠지기 일쑤였던 남동생은 지금 사업에 성공해 세상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요즘은 사람 똥 밟기가 어렵다. 길 가다가 강아지 똥이라도 밟아본 사람은 대부분 “에이, 재수 없어.”라고 열이면 아홉은 말한다. 오죽하면 안 좋은 일을 만난 사람에게 ‘그 사람 똥 밟았네!’라고 말할까?

나는 매일 시쳇말로 ‘똥 밟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어르신 어디 가세요?” 

영락없이 3시가 되면 S어르신의 배회가 시작된다. 

“아니, 우리 애들 올 시간인데 내가 집에 가야지, 매일 일한다고 지들만 놓고 다니니까.”

하며 울먹인다. 

“어르신 애들 지금 유치원에서 공부 잘하고 있대요, 지금 전화 왔는데 어르신 4시에 차 타고 오시면 애들도 집에 와 있겠다고 합니다. 그때 만나세요.”

“아, 애들한테 전화 왔어요? 아유 고마워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수업하세요. 시간 되면 불러드릴게요.”

“그래요, 고마워요.”

하며 기분 좋게 교실로 들어가신다.


“저 어르신은 아이들 어릴 때 말씀을 많이 하시네요!”

“그러게요, 참 안되셨어. 아들 둘 데리고 혼자 사시다가 좋은 분 만나서 재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연세도 얼마 안 되셨잖아요!”

“예순둘.”

“그래요? 정말 결혼하신 분 똥 밟으셨네.”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배우자만 그러신가? 여기 계신 분들 다 그렇지, 하루아침의 치매라니 얼마나 억울할까?”

“그래도 다행히 배우자님이 지극정성이세요. 아들들도 그렇게 잘하고.”   



  

‘노치원’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기억을 잃어가는 어르신 70여 명이 등급별로 나뉘어 매일 웃고 울고 노래하고 운동하고 놀이하는 어르신들의 ‘기억학교’이다.      

오늘만 기억하기에 하루하루가 새롭다. 지금만 기억하기에 순간이 새롭다. 치매가 왔어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이 깃든 곳.


나는 기억학교의 사회복지사다. 그리고 지금 기억을 잃기 전 딱 하루만 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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