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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2. 오해의 열쇠는 이해

척 보면 압니다

“선생님, 선생님 면접 보러 왔을 때 내가 일부러 애기들 앉혀 놓은 거예요, 아무리 인상이 좋아도 애들은 다 알거든요. 지들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기 전 어린이집교사로 수년간 근무했다. 중간에 사정이 있어 영유아전담 어린이집으로 잠깐 이직을 했었는데 그때 듣게 된 나의 면접 후일담이다. 만약 아이들이 나를 보고 울었다면 나는 가차 없이 면접에서 낙방했을 것이다. 

낭설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순한 인상의 사람이라도 개들은 개장수를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꼬리를 내리고, 뱀들은 땅꾼을 알아보고 슬슬 피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해하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오랜 세월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얘, 밥은 먹고 일하냐?”

하루에도 수십 번 배회하다 묻는 안부이다.

“네 어르신, 어르신 점심 드시고 저도 먹어야죠.”

“자꾸 끼니 거르면 몸 상한다, 니 몸 챙겨가며 일해.”

“네, 어르신 감사해요.”

“그래, 근데 너는 어쩜 이렇게 이쁘냐?”

“제가 예뻐요? 어르신?”

“그럼, 얼마나 예쁘냐, 쌩글쌩글 웃는 게”

“어르신이 예쁘다고 하니 기분 좋네요.”

“얘, 나는 거짓말은 안 해, 나는 지금껏 살면서 남에게 요만큼도 거짓말 안 해봤다.”

“네, 어르신 그러신 거 같아요.”

“그래, 너는 마음이 착해서 더 예뻐!”

“에이, 어르신 마음이 보이나요?”

“그럼, 척 보면 알지, 너는 아주 정이 많아, 그래서 예뻐!”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간다고 배회하시는 L어르신. 아무리 치매에 걸리고 매일 똑같은 말을 수십 번 들어도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말.      




“우리 M어르신 이렇게 건강한 모습 뵈니 너무 좋아요.”

질병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나온 어르신이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마스크 위로 입맞춤을 했다. 그 순간 어르신도 내 양볼을 손을 감싸더니 이마를 대고 비벼준다. 

“세상에, 아무도 못 알아보고 말도 없으신 분이…….”

어르신의 행동에 모두들 놀랐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웬만한 사명감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복지사도 그렇지만 어르신들 접점에서 

식사부터 배변까지 책임지고 케어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보면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이곳 센터의 요양보호사선생님들은 노인운동, 실버체조, 웃음코칭, 실버댄스, 힐링댄스, 실버요가등 사비로 자격증을  취득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요양보호사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처음 센터에 면접 왔을 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당당함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복지팀, 요양팀, 물리치료팀, 간호팀, 조리팀 등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 다양한 영역이 있고 고유 업무가 있다. 어찌 보면 다 각각의 일인 거 같지만 한 몸의 지체들로 유기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 어르신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00 선생님 이번에 그만둔다고 하네요.”

“그러게, 아까운 사람인데, 저런 사람 또 없지.”

중고참 격에 열정적으로 일하던 Y선생님의 퇴사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기 전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던 경험으로 어르신들을 극진히 사랑한 선생님. 수년간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보면 어깨며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다. 어르신 기저귀케어, 목욕, 이동, 식사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평생 일을 해본 적 없는 Y선생님은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학교선생님인 남매에게 늘 ‘존경하는 어머니’라는 표현을 듣는다고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해도 그의 본심을 느끼는 어르신들은 모두 Y선생님을 좋아한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병원을 다녀도 낫지를 않네요, 혹시 잠깐 휴직했다가 오던지 근무시간을 짧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정해진 인원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계속 비워두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일을 추가시킬 수 없고.” 

퇴직을 결정하기 전 다양한 고민을 해 보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처우도 복지도 좋지 못한 요양보호사의 

업으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엄마, 아무래도 이직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들의 말에,

‘연봉 오천을 포기하고 이직을 한다고? 남의 돈 먹기가 쉽냐!’ 목구멍 어귀까지 차오르는 말을 내뱉고 

싶었으나 꾹꾹 참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부서를 옮겨서라도 좀 더 해보면 어때?”

“엄마, 내가 그렇게 공부하고 들어가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연봉 오천이상이면 해 볼만 하지 않니? 몇 년 사업자금이라도 모아서 나오던가, 엄마는 얼마 받는지 알아?”

“알죠, 그래도 엄마는 가치 있는 일을 하잖아요.”

‘가치 있는 일.’ 

그 말에 박봉의 월급이나 낮은 처우 등은 다 땅속에 묻혀버렸다. 

“그럼 너도 사회복지사 되던가, 가치 있게!” 

“그건 아니죠, 나는 돈도 많이 벌어야죠.”

그래, 아들의 말이 현실이다. ‘가치’ 하나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치’ 없게 만드는 것.    


 



매주 목요일은 어르신 목욕서비스를 한다. 어르신 한 명 당 지원되는 목욕 비는 3천 원이 조금 넘는다. 

요양보호사들의 아픈 허리와 어깨를 위해 물리치료 1회 값도 안 되는 현실. 

“고마워요!” 그저 어르신들 따뜻한 말 한마디에 툭툭 털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복지사선생님 이런 거 안 사 와도 돼.”

“아니, 나 첫 월급 받았잖아요. 그래서 쏘는 거예요.”

“이번엔 또 왜 커피를 사?”

“나 휴가 갔다 왔잖아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목요일마다 빵이나 시원한 음료를 준비한다. 


“자, 이거 하나 먹어.”

아침마다 유산균을 챙겨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

“점심 먹었으니 비타민 먹어요.”

점심 식사 후 비타민 챙겨주는 요양보호사 선생님.


‘우리 서로 고마워요.’

말 안 해도 척 보면 알죠. 마음은 통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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