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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5. 2023

#2. 오해의 열쇠는 이해

어디 가세요?

“여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앞에 뭐가 보여요?”

“뭐, 여기 무슨 교회가 있는 것도 같은데, 도통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네, 나 좀 데리러 와”

술 한 잔을 거나하게 걸친 아버지의 전화 한 통.

“아주 이젠 집도 못 찾을 정도로 술을 먹는구나! 이그, 지겨워”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 엄마는 집에 오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아버지를 데리러 나갔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그저 술에 취해 집을 못 찾는 거라고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치매 어르신과 생활해 보니 

그것은 알코올성 치매 초기 증상이었다.     




“J어르신은 말씀하시는 것도 행동하시는 것도 괜찮으신데 치매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되네요.”

“사람은 겉모습을 믿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이 딱 맞는 게 바로 치매더라고요.”

“그래요, 저 어르신이 밤마다 좋아하는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가신대요, 근데 집을 못 찾고 매일 길을 

헤매니 가족들이 걱정이 많았대요. 문을 잠가놓으면 수시로 열고 나가니 밤에 가족들도 덩달아 잠을 

못 잔다고 하더라고요.”     


“복지사님, 우리 어머니 센터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보호자의 상담전화이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바른말 잘하기로 소문난 S어르신.  

요즘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앉아 있거나 목적 없이 배회하는 경우가 잦다. 보호자에게 센터에서의 변화를 상세히 설명하고 가정에서 어르신 행동 변화를 질문했다.

“요즘 어머니 집에서도 화장실 갔다가 어머니 방도 못 찾으시네요.”     


인지기능의 하나인  ‘지남력’은 사람이나 장소 시간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뇌의 질병이나 손상으로 치매가

찾아오게 되면 경험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판단력도 저하된다. 가끔 핸드폰으로 ‘노란색 셔츠에 안경을

착용한 키 170 정도의 어르신을 찾습니다. 란 긴급 문자가 오곤 한다. 혼자 집을 나선 치매 어르신이 길을 잃고 실종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치매국가책임제 정책 사업을 하고 있다. 

배회가 심한 치매 가족 있다면 ‘치매국가 책임제’ 정책 중 하나인 치매환자 실종제로(Zero) 사업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예방인식표 발급 및 지문등록 서비스로 치매어르신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스티커에 코드를 등록해 옷에 붙이거나 지문등록을 통해 신상정보 및 보호자 연락처 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이다. 

그와 함께 어르신 돌봄이나 인지기능향상을 위한 주간보호센터등 노인 장기요양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의 지남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인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월 1일이 되면 달력 만들기를 하며 날짜와 계절,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어르신 우리 6월엔 어떤 절기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6월엔 하지가 있지, 하지 감자가 얼마나 맛있는데!”

“네 맞아요. 하지에는 감자를 수확하기 때문에 ‘하지감자’가 맛있기로 유명하죠.”

“아, 그리고 낮도 가장 길잖아.”

특히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은 계절에 따른 다양한 경험을 떠올리며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브레인힐’ ‘베러코그’등 인지프로그램을 통해 숨은 그림 찾기 다른 그림 찾기, 기억력 훈련 등을 한다.     


“선생님, 나 뭐 적을 거 하나 줘요”

“네 어르신 메모하실 거 있으세요?”

“네, 변비에 좋다는 유산균이 있다고 해서 집에 적어가려고요.”

멍하게 앉아 있거나 목적지를 잃어버려 배회하던 S어르신이 예전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어르신 여기 있어요, 그런데 어르신 요즘은 더 좋아 보이세요. 오늘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기볶음이 맛있더라고요.”

“그러셨어요? 어르신이 다시 식사도 잘하시고 컨디션 좋아지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고마워요.”


어르신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요양원 등을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있다. 

주간보호센터에 어르신을 보낸다는 것은 어르신의 잔존능력 유지와 향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굳은 신념이 없다면 어르신을 가정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택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신체, 인지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보호자의 신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어르신 변은 잘 보셨어요?”

“네, 그때 그 유산균 적어서 며느리 보여줬더니 사줘서 먹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S어르신 보호자는 어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주간보호센터와 협력해 어르신 인지기능 발달과 

신체 잔존기능 향상 및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이리 오셔, 화장실은 여기예요” 


“내가 이 어르신 휠체어밀고 차까지 갈게요.”


식사도 잘하시고 예전의 활기를 다시 찾으신 S어르신은 동료 어르신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배회를 하는 어르신을 교실로 안내하거나 귀가 차량 송영 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돕기도 한다. 보호자의 신념과 

장기요양프로그램에 대한 신뢰, 그리고 센터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질 높은 어르신 케어와 사랑과 관심이 총체적 난국이었던 S어르신을 변화시키고 빛나게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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