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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3. 2023

#2. 오해의 열쇠는 이해

똥 바른 게 아니야!

내가 5학년 때까지 엄마는 이대 입구에서 분식점을 했다. 규모가 있다 보니 부모님은 그곳에 살며 장사를 하고 우리 육 남매는 할머니 손에서 크게 되었다. 수도, 가스, 냉장고도 없던 시절 할머니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석유곤로에 밥을 했다. 학교 급식도 없던 때라 새벽 4시면 일어나 도시락을 10개씩 싸며 살림을 했다. 육 남매 빨래해 대느라 손끝이 다 닳아 갈라져도 사계절 내내 마룻바닥은 반질반질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닦으셨다. 어느덧 육 남매도 성장해 하나둘 가정을 이루어 나가고 할머니는 증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얘 할머니가 이상하다, 냉장고를 막 뒤져서 손가락으로 음식을 다 파먹는다.”
 “아휴, 손가락으로 똥을 파서 사방에 다 발라 놓으니 어쩌면 좋니?”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동백기름 발라 쪽 찌어 올린 머리, 여름이면 빳빳이 다린 모시 적삼. 단아하고 깔끔했던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치매는 할머니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꼬박 3년 엄마는 할머니 똥오줌을 받아 내며 수발을 했다. 행여 집안에 몹쓸 냄새라도 날까 봐 닦고 또 닦고……. 엄마의 몸도 마음도 깎여져 내려갔다.     




“으으으 응! 으으으 응!”

아침부터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어르신의 신음소리!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화장실로 급히 가보니 어르신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힘을 주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어르신들은 변비에 시달린다. 특히 치매에 걸려 약을 먹고 있는 어르신들은 변비가 심해져 주기적으로 관장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르신 그 손으로 만지면 안 돼요!”

어르신의 손은 어느덧 항문을 향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는 똥을 벽에 바르던 할머니가 생각나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황도 잠시 어느덧 내 손에는 라텍스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어르신의 굳어진 항문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몇 번 마사지하니 딱딱했던 항문 주위는 물렁물렁해지고 어르신 표정은 훨씬 나아졌다. 그래도 변이 나오지 않자 어르신은 또 손을 항문으로 가져간다.

“잠깐만요, 어르신 제가 할게요”

어르신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얼른 손가락을 어르신 항문에 넣고 변을 파드렸다. 모처럼 쾌변을 하신 어르신은 식사도 맛있게 하며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그래, 너는 아주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에게 우리는 덕담인지 악담인지 묘한 경계에 서 있는 말을 내뱉곤 한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벽에 똥칠하는 경우는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지 상태가 안 좋아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변비로 인한 답답함 때문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변을 파내는 경우이다. 그리고 스스로 손에 묻은 변을 닦아내기 위해 애쓴 결과이다.

     

“네가? 정말 네가 그렇게까지 했다고?”

퇴근 후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위가 약해 남의 집 음식은 입에도 못 대고 ‘더럽다’를 입에 달고 살던 내가 어르신 변을 손으로 파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는 얼마 동안 가족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다.  

    



한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똥을 파서 아무 데나 묻히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치매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곳 주간보호센터는 어르신들의 잔존능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루 8시간 이상 70여 명의 동료 어르신들과 운동, 인지 활동, 미술, 웃음 치료, 레크리에이션, 실버체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르신들이 센터에서 시간을 보낼 때 가족들은 일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길 수 있다.

2017년 9월 18일 시작된 치매 국가책임제.

치매 안심 센터를 통한 1:1 맞춤형 관리부터 전문치료지원, 요양서비스 확대, 경제적 비용부담 경감까지 국가에서 치매 환자를 책임지는 정책이다. 이 정책으로 집집마다 수도와 도시가스가 놓이는 것 이상의 편리함이 치매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


수도, 도시가스도 없던 시절 손끝이 다 닳도록 살림을 했던 우리 할머니는 이 좋은 세상을 만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휴, 할머니 때문에 못살아, 더러워 죽겠네! 도대체 왜 그러셔!”

할머니 때문에 살아온 손자들의 구박을 받으며 얼마나 서러우셨을까?

“똥 바른 게 아니야!”

깔끔하신 할머니는 어쩌면 수십 번 초점 잃은 눈빛으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어머, 웬일일까? 우리 어르신 밥 한 그릇을 뚝딱 드셨네요.”

“어르신 오늘 쾌변 하셨잖아요, 며칠 묵은 변을 다 누셨으니

배도 고프시겠지요.”

“어르신, 매우 답답하셨지요? 속이 시원하니 밥도 맛있지요?”

“으응.”


쾌변으로 밝게 웃는 어르신의 반달눈 속에 우리 할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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