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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7. 2023

#2. 오해의 열쇠는 이해

사라질 뻔한 침대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000 센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P어르신 보호자인데요, 저희 어머니 복지용구 신청을 하려는데 공단에서 센터로

사정 나와도 괜찮을까 해서요.”

“네, 보호자님 공단에서 몇 시쯤 오실까요?”

“오전 10시 30분쯤 될 거 같아요. 요즘 어머니가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화장실 케어도 점점 힘들어서

 침대 신청하려고요.”

“네, 보호자님 그럼 어르신 사정 잘 받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복지용구는 장기요양 수급자 어르신의 일상생활 및 신체, 인지 기능 유지 및 향상에 필요한 용구이다. 

복지용구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복지용구 급여확인서가 필요하다. 장기요양 인정서에 재가급여 또는 가족요양비 지급 대상자 이어야 하며  요양원 등 시설 입소자는 지원받을 수 없다. 연간 한도 160만 원 내에서 본인

 부담률에 따라 85~10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화장실로 이동이 쉬운 이동변기, 목욕의자, 성인용 보행기, 안전손잡이, 미끄럼 방지용품 등 구입할 수 있는 품목과 수동휠체어, 전동침대, 수동침대, 이동욕조, 배회감지기 등 대여품목으로 구분된다.      

평소 자립이 어려운 P어르신이 가정에서 사용할 침대를 지원받아 대여하고자 공단에서 어르신 상태를 점검하러 나온다는 것이다.




“어르신, 공단에서 어르신 잘 걷나 보러 오신대요, 어르신 잘하실 수 있지요?”

라고 말하니 어르신은 고개를  힘없이 끄덕인다.

“안녕하세요? 공단에서 나왔는데 P어르신 지금 뵐 수 있을까요?”

“네, 어서 오세요, 어르신 준비하고 계세요.”


공단 사정관을 교실 한적한 곳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어르신을 보고 공단 사정관이 말한다.

“자, P어르신 한 번 걸어 보실까요? 잘하실 수 있지요?”

공단 사정관의 말을 듣고 P어르신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사정관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요양보호사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박수를 치며

“어머, P어르신, 잘하셨어요.”

라고 말하니 P어르신은 두 팔을 휘저으며 터벅터벅 걷기까지 한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기이한 장면이라도 본 것처럼 모두가 흥분되기 시작했다.

 ‘침대는 물 건너갔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 원래는 전혀 못 걷는 분인데, 오늘 이상하시네요!”

나는 사정관을 바라보며 불안한 듯 이야기했다.


“가끔 사정 다니다 보면 이런 일이 있더라고요, 당장 걷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시적일 수 있으니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볼게요.”

‘휴, 다행이다!’ 

“자, 어르신 앉았다 일어났다 할게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앉았던 어르신이 침대 안전 바를 붙잡고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르신, 아무것도 붙잡지 마시고 다시 할게요.”

그러자 어르신은 아예 일어설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네, 고생하셨어요.”

“그럼, 이제 다 된 건가요?”

“네, 어르신 걷기는 하셔도 스스로 일어섰다 앉았다는 전혀 못하시네요.”

“아, 그럼 침대 지원받을 수 있나요.”

“네, 침대 지원 가능하시네요.”

혹시 침대 대여가 안 될까 봐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엄마, 공단에서 나오면 무조건 모른다 해야 돼.”

몇 년 전 가정요양 때문에 등급을 받으려는 모녀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사회복지사도 아니었고

치매등급을 어떻게 받고 나라에서 지원은 얼마나 되는지 몰랐기 때문에 관심 없이 흘려들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도 떠도는 소문에 등급을 잘 받기 위해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 걸음도 잘 못 걷는 척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가정에서 치매사정을 받게 되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공단에서는 오히려 센터에서의 사정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어르신의 돌발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아찔하다.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침대가 사라질 뻔한 이야기.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어르신도 걷게 하는 묘약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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