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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pen Sally May 03. 2022

싱가포르 로컬초등학교 담임에게 메일을 쓰다

어른이 되는 것


아이 담임에게  처음으로 친구 문제로 이메일을 보냈다.

5학년이 될 때까지 고맙게도 아이는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도 잘 사귀고( 물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긴 있었지만 아이가 알아서 잘 헤쳐왔다) 학교생활을 잘해오고 있다.

그런데 5 학년이 되고 유독 한 아이 바로 뒷자리에 않은 ㅇㅇ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데 어엇 이야기의 주제가 심상치가 않다.

엄마 짬밥 만 11년 차 이웅 이웅 내부 알람 풀가동되기 시작! 일단 귀를 활짝 열고 예의 주시했다.

우리 아이는 남자아이 치고 수다가 정말 많은 아이다. 가끔 내가 너무 피곤할 때는 ‘그 입 좀 다물어 줄래’ 하는 말이 목젖을 때리고 나오려 하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참는다.

아무튼 그래서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어떤 아이가 어떻게 말했고 행동해서 자기도 어떻게 했고 너무 웃겼고 너무 화났고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고마운 일이다.  공부는 어찌하는지 몰라도 (ㅋㅋ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중요한 이야기는 아주 머리를 굴려서 유도 신문을 살살해야 한두 마디씩 튀어나온다.) 학교 생활은 재불 재불 이야기를 해주니 대충 어떻게 지내는지 교우관계 등을 나름 파악할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던 그 아이,ㅇㅇ이란 이름이 올해 초부터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데 그 아이가 한 말들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일단 싱가포르 로컬 학교 5 학년이 되면 성교육을 실시를 위해 부모의 동의서를 받아간다. 과학수업은 그에 맞춘 것인지 생식, 번식 (Reproduction)을 배운다.

그래서 서서히 사춘기를 향해 가는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의 문이 제대로 열리고 만다. 로컬학교를 보낸 선배 엄마들이 하나 같이 이때 아이들의 과학 성적이 최고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고 한다.

이렇게 호기심 천국에 막 들어 선 꾸러기들이 하는 소위 야한 농담과 이야기들을 순진무구한 얼굴로 우리 아이는 내게 다 이야기해 준다.

‘엄마, 내 입으로 말하기 그런데… ㅇㅇ가 …

ㅇㅇ이가 그러는 데 있지 그게 뭔지 알아?

ㅇㅇ이가 그러는데 그건 어쩌고…’

그래도 육아서적 좀 읽었다고 아이는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아이에게 끌리는 경향이 크다는 것과 엄마는 그 친구가 싫어도 아이를 못 놀게 하는 건 아닌 것 정도는 안다. 설령 놀지 말라고 정색하면 또 내게는 더 이상 말을 안 할지도 모르니 일단은 조심 모드 온 하고 이야기의 수위에 나도 모르게 ‘욱’ 함이 튀어나와도 참고 또 일단 열심히 들어줬다. 나도 남자아이를 키우니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차 학교에서 폴리오 예방접종을 위해  아기 수첩 개념인 ‘헬스 북클릿’, 일종의 접종 수첩을 가져오라고 해서 아이 편에 보냈다.

그날 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아이가 꽤나 심각하게 엄마를 부른다.

“ 엄마… 나… 엄마 아빠 친아들 맞아?”

“그럼 넌 사랑스러운 엄마 친아들이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그 수첩 첫 장에 출생 관련 정보를 적고 부모 인적사항을 적어야 하는데 칸이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나도 아이가 이야기를 해주어 그제야  알았다.


“엄마 ㅇㅇ가 그거 안 적혀 있음 입양된 걸 수도 있다고 엄마 아빠가 B형이면 자식이 O형은  못 나온다 했어.”


“엄마 아빠 진짜 내 친부모 맞지? 나… 입양한 아이라도 계속 사랑해 줄 거지? 사실대로 말해 줘!

친부모를 찾아가야 하나 너무 고민이 됐어” 무척 진지하게 묻는 아이의 모습에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아니 5학년이나 된 아이가 이렇게 순진할 수 있나 싶다가도 제 딴에 얼마나 놀랬을까 싶어 일단 아이에게 “엄마 아빠 친부모 맞아.” 하고 그래도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출생증명서부터 보여주고 이모들, 할머니, 아빠의 출생 당시 증언들을 낱낱이 듣게 해 주었다.( 조산으로 일종의 응급 출산이어서 아이의 출생 당시를 기록한 사진이나 영상은 없다). 덧붙여 부모가 B형이라도 둘 다 BO라면 O형의 자녀가 나올 수 있다는 생물 미니 강의도 해주었다. 이런 조금은 황당한 증명을 해주다 보니 그 ㅇㅇ이에게 살짝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의 말만 듣고 뭔가 액션을 취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겠다 싶어 아이만 잘 다독여 주고 아이도 이슈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해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오더니 나와 남편이 해준 이야기를 ㅇㅇ에게 하니 또 그 아이가 이번에는 “너네 엄마가 남편이 두 명일지도 몰라.”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고 한다. 순간 이건 아니지 싶어 아이에게 “아무래도 선생님께 그간 ㅇㅇ이의 언행을 이야기하고 조심시켜 달라고 리포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니 아이는 또 자기가 해결해 보고 싶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귀를 더욱 바짝 세우고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그렇게 텀 브레이크도 있고 별 다른 말이 없길래 이제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아이가 지난주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선생님께 말해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아이의 외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태연히 했다고…

우리 아이는 ㅇㅇ이와 가까이 앉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메일을 썼다.

이메일 요약


담임 선생님께


이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많이 참았습니다.

이제는 참을성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 아이가 그동안 ㅇㅇ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ㅇㅇ가 학년 초부터 그간

성적인 농담을 그것도 수위가 아주 높은 말들과

아주 부적절한 행위를 묘사하는 동작에다

그 부적절한 의미를 담은 신음 소리까지 내며 재미있어하고

심지어는 부적절한 불법 사이트까지 언급했다 합니다.

수업시간에도 서슴없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수업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도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점차 수위가 높아져 불편해지니

ㅇㅇ에게 그런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고도 직접 말했습니다.

저도 남자아이를 키우고 남자아이들은 더 짓궂게 농담하고 장난을 치는 경향을 알고 이해하려 했고 우리 아이에게도 ㅇㅇ를 이해하도록 노력해보고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 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그런 부적절한 말과 행동 말고도

ㅇㅇ이가 우리 아이에게


너네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니야

넌 입양됐을 걸?!

너네 엄마는 남편이 두 명이야

너네 엄마를 죽일 거야

너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늘 교통사고나 사고로 벌써 죽었을 거야…


등등의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은 우리 아이에게 큰 상처와 불쾌감을 안겼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ㅇㅇ이 자리를 우리 아이와 떨어트려 주시길 부탁드리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메일을 다 쓰고 아이에게 보여주며 사실 여부를 다시 정확히 확인했다.

그 아이가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이 있는지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없는지 우리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고 최종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혹시나 이런 이슈가 담임에게 알려도 되는 것인지 워딩에 문제는 없는지 공립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나의 싱가포르 베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었다.

“이런 문제로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도 될까?

행여 혹시라도 내가 싱가포르 학교 문화를 잘 몰라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아!”라고 하니

이 친구 왈

“샐리, 나 같음 진즉에 이메일 보냈어!

너 진짜 많이 참은 거야~~

이 메일도 사실에 근거해 잘 썼어 훌륭해!

담임 선생님도 알려줘서 고마워할 거야”

그래서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솔직히 이렇게 공식적인 항의(?)를 한 것이 처음이고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또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의 조치는 발 빨랐다.

그리고 의례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그런 사실들을 알려준 것을 고마워하셨다.

일단 그 아이를 불러 사실 확인과 주의를 줬고

우리 아이에게 사과를 하게 했고

일종의 생기부 같은 리포트 북에 기록을 남기고

자리를 바로 이동 조치하고

우리 아이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다시 듣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모든 것은 선생님께 이메일 보낸 다음날 조치되고 하교 시간쯤 이메일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다른 조치사항이 더 필요하면 자기에게 다시 알려 줄 것과 우리 아이의 상태가 학교에서는 괜찮아 보였지만 어떤지 다시 한번 물으며 이메일이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도 선생님의 발 빠른 대처에 더 이상 수업시간에  그 아이의 이상한 말을 안 들어도 되어 너무 좋다고 한다. ㅇㅇ이가 선생님이 시켜서였겠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  같아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앞으로도 같은 반 친구로 사이 나쁘게 지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이 모든 해프닝이 나름 해피엔딩으로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엄마 아빠는 무조건 너의 편이야!

어떤 문제라도 너를 불편하게 하거나 고민되게 한다면 알려주렴.

너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게 언제나 최선을 다할 거야.

늘 너의 학교 생활을, 기분을 엄마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이가 씩 웃는다.

가끔은 아직도 아이의 수다가 너무 길어 괴롭지만

이런 날들도 얼마지 않아 그리워지겠지?!

즐기… 려고 하지만 사실은 오늘도 그 만 좀 떠들라고 하고픈 나의 마음의 소리와 사투 중…


덧붙여 학교에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어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 정확한 상황 설명과 팩트를 주고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학교에서 어떻게 해 줄 수 있나 그들에게 공을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사실 그 ㅇㅇ이를 생각하면 뭔가 짠한 마음과 뭔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싱가포르 베프가 명쾌하게 정리를 해준다!

“샐리, 그런 마음 갖지 마. 그 아이도 수용되는 것과 선을 넘는 것에 대해 이제 확실히 알고 배웠을 거야

잘했어!”


엄마로서 나의 아이를 위해 한 일이지만 내가 조금 낸 용기가 어쩌면 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아이를 조금은 덜 험한 길로 갈 수 있게 살짝 방향을 틀어 길을 열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을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

아이도 나도 그렇게 또 우리는 한 뼘씩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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