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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Dec 28. 2020

라때는 말이야...

생각이 늙는 건 한 순간이었다.



40을 코 앞에 두고 마지막에 참여했던 영화의 막내 친구가 나에게 "라때 누나"라고 불렀다. 

처음 영화를 하는 친구였고, 업무 구조상 여러 다른 파트의 일을 보조 하지만 

현장에서는 나랑 밀착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엔 인물 조감독을 도와서 오디션 업무 보조를 하고 있었고,

둘은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매번 지적을 받는 그가 안타까웠고, 

이 친구가 최소한 나로 인해서 영화를 그만두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그해 7월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통과되었고, 그걸 프린트해서 사무실 벽에 붙였다. 

드디어 뭔가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끌어다가 업무에 관해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내 입장에서도 업무 이해도를 높여주면 편해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과몰입되어서,

 

"나 때는 아무도 업무에 관해서 잘 가르쳐 주지 않고 지적부터 해서 많이 힘들었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니 언제든지 물어봐라"

"그래도 최저 시급을 보장받으며 월급을 받는 환경이 되어 영화계도 많이 좋아졌다"   


는 말을 했다. 


그렇게 '라때 누나'라는 말을 듣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는 라테는 부드럽고 달콤한 그것이었으니까. 

내가 선배로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달랐다. 

신조어냐고 물었지만 제대로 말해주지 않고 웃기만 해서 

검색을 해 보면 되는데, 그것조차 귀찮아서 그냥 나 좋을 대로 해석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같이 영화를 했던 지인들의 모임이 있었고, 

또 다른 90년생 친구에게 '라때 누나'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무언가 말을 할 때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을 시작하는 꼰대를 요즘 말로 부르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 창피함이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꼰대가 된다고, 나도 라때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인터넷 뉴스도 안 보고, TV나 드라마도 잘 안 보던 때라 더더욱 구시대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심 영화랑 책만 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었지만 더 이상 이럴 순 없었다. 

다음날 바로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편의점에서 파는 '라때 과자'도 그에게 선물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 척 쿨하게 행동했지만 '라때 과자'를 사는 순간부터 이미 쿨하지 않았다. 


매번 영화계의 불합리한 시스템에 관해서 토로하며, 

이걸 바꾸는 방법은 내가 결정권 자리에 올라가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하지만 이건 틀려도 한참을 틀려먹었다. 

사람이 둘만 모여도 그 속에 권력이 생기고, 약자와 강자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어느덧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에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라때'의 위치에 와 있었다. 

나의 무뎌짐에 경악했고, 나의 안일함이 무서웠다. 

한편으론 제대로 갑질 한 번 못했는데, 그렇게 불린다는 게 억울했다. 


처음 연출부 계약을 했을 때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주던 시대였다. 

영화계 표준계약서는 2014년 정도부터 논의되어 매년 개정 중이다.

그때는 으레 기간 정함이 없이 계약을 했고, 

여러 가지 스케줄 문제로 촬영기간이 늘어나도 계약한 금액 이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2011년 당시 500만 원을 받고 10개월가량 일한 나의 한 달 월급은 50만 원 정도였다. 

그 돈으론 월세와 각종 생활비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다. 

부끄럽지만 부모님 카드로 나머지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그에 비하면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영화 현장도 점점 변해갔고, 

촬영 시간도 12시간 이상을 찍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주말 출근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문화도 점점 없어져갔다. 

그러한 과정이 내심 좋았고, 앞으로도 버티다 보면 더 좋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다. 

내 경험 내에선 갓 대학을 졸업한 무경험의 초년생에게 

초봉을 200 넘게 주는 상황이 정말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았던 친구에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개선하려면 갈 길이 먼 불합리한 점이 존재하는데,

좋아지고 있다는 내 생각만 강요했다.  


주 52주 근로 기준에 맞춘 200의 초봉은 그 이상을 일하는 환경에선 사실 부당한 처우가 맞다. 

그러니 나의 말들이 "라때는 말이야"로 들릴 수밖에.. 


철저히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어느덧 세뇌되어 을 주제에 갑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라때'를 말하며 좋아졌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라니 너무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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