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게임의 룰을 몰랐을까?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관련주라는 이유로 '바른손'의 주가가 30% 가까이 급등을 하였다.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 영화는 '기생충'으로부터 느끼는 위상과 달리
K 콘텐츠의 흥행 수익을 분배받을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의 승자들은 글로벌 시장에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티켓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계약구조는 제작하고 납품하면 저작권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넷플릭스가 가진다.
하청업체가 돈을 벌려면 더 많은 수주를 따내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영화는 공산품처럼 찍어낼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치가 있다.
지금의 많은 제작사들은 예전처럼 극장에서 망해서 제작비 조차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당장의 제작비에서 추가로 10~20% 수익률 정도의 금액을 보장받고
넷플릭스가 사주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상황이다.
그러니 망해가던 한국 영화계를 넷플릭스가 먹여 살린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 제작사들이 지금이라도 적절한 인건비와 제작 여건을 고려한 스케줄을 짜면서
다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당장의 수주를 위해 스텝들의 인권을 쥐어짜는 걸 보면 이 게임을 관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와중에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넷플릭스는 절감된 비용으로
콘텐츠 차제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면서 공정한 룰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해가고 있다.
3대 메이저 배급사(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가 모든 걸 쥐고 있던
한국영화의 수익구조를 살펴보자.
계산하기 쉽게 극장 티켓값을 만원으로 가정하고
100억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천만 관객이 들면서 1000억의 수익이 생긴다.
10%인 100억 원이 부가가치세라는 세금으로,
3%인 30억 원이 영화발전기금으로 빠진다.
나머지 870억을 CJ CGV와 롯데시네마 기준으로
극장 : 배급사가 45:55의 비율로 배분한다.
이 비율을 '부율'이라고 부른다.
배급사가 가지는 55%인 약 480억에서
10%인 48억을 먼저 자신의 몫으로 떼어놓는다.
나머지 432억 중 제작비 100억을 제외한 순이익 332억을
투자사와 제작사가 나눠 갖는다.
한국 영화의 통상적인 투자사 : 제작사 수익 배분 비율은 6:4
제작사가 가지는 돈은 332억의 40%인 약 133억 원이다.
이 133억 원을 다시 제작사, 감독, 배우, 일부 스텝들이 계약 조건에 따라서 나눠갖는다.
입봉 감독 기준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각본료로 3000만 원 정도를 받고 5~10% 정도의 지분 계약을 하게 된다.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었다는 전제하에
캐스팅을 하고 투자 심사를 받고 실제 제작 기간을 거쳐 편집을 하고 완성하기까지
최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입봉 감독이 이 게임에서 승리해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수익은 13억 원 정도이다.
할만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3대 메이저 회사가 기획, 투자, 제작, 배급까지 담당하며
영화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로 흘러왔다.
그들이 장악한 한국 영화계는 다양성보다는 좌석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소재나 적은 제작비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양산하며 콘텐츠의 질보다는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걸 차지하는 방식에 더 치중했다.
공정한 룰을 외치며 스크린쿼터를 외치던 영화인 선배들은
파이를 늘리기보다는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며 어느새 기득권이 되었다.
기득권을 차지한 그들은 해외 판권을 개척하며 역량을 늘려오기보다는
투자될 만한 시나리오만 기획하거나
영화 학교나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허울뿐인 명분으로 기획 비용을 아웃소싱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 넷플릭스로 가는 많은 감독들은 본인이 제작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기득권인 그들의 입장에서도 흥행을 빌미로 배우 캐스팅과 각본의 수정을 요구하는 기존의 시스템보다
콘텐츠의 자율성과 일정 수익까지 보장해주는 넷플릭스가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시스템 내에서 감독이 되고 싶었던 이들 또한 본인이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보다는
투자에 유리한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굶어 죽었고,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을 낙오자로 취급했다.
모두가 한정된 스크린을 가지고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이 게임을 그만 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한국의 제작사들과 감독들은 하청업자에 불과했다.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겼던 그들 또한 을이었을 뿐이다.
지난 10년간 나 또한 게임의 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게임을 이기겠다고
주변 사람들과 가족을 등한시하는 삶을 살았다.
처음 주식과 투자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때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살면서 게임의 룰을 모르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멍청했다고 여겼다.
한 동안 부를 일구었다는 사람들의 말과 글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 교육을 경멸했고,
내 부모의 가난과 그 가난을 대물림하는 삶의 방식을 원망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게임의 룰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을 이기게 해 주겠다는 많은 책들에서
나와 내 가족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게임의 룰을 알아야 하고
최대한 타인의 시간을 레버리지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게
이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눈앞에 놓인 456억이라는 돈을 보고
게임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선택을 저버리는 걸 보면서
내가 혼자서 잘 살아보겠다고 했던 선택들이 이 게임을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게임에서 이기는 건 그 게임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임의 세계에선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상금도 커지기에
친절하게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며 너도 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물론 그중에 한 사람은 살아남아서 456억을 차지할 순 있겠지만
그렇게 혼자 살아남아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죽도록 게임의 룰을 익혀서 차지하게 될 456억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과 내 죽음을 담보하지 않고 다 같이 잘 사는 고민을 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만 억울하게 벼락 거지가 된다는 말들을 하겠지만
지금껏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끌려 다녔기에 게임의 룰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민하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건데, 지금 잠깐 손해 보면 어떤가?
스스로 경쟁에서 탈락해 죽음을 떠올리거나
누군가를 경쟁으로 밀어내어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의 부족함과 지금의 손해로 누군가의 삶이 나아진다면 그 또한 좋다.
혼자 게임을 관두면 그 또한 나만 생각한 거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과반을 설득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면서 살고 싶다.
내가 흥행 감독이 돼보지 못해서 얼마나 그 열매가 달콤한지 모르겠다.
그냥 난 게임을 관두고 싶고,
과반의 동의를 얻기 위해 열심히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글을 남기는 방법을 택했다.
내 역량이 허락하는 한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고,
함께 만드는 이들과 지분을 나누면서 다 함께 그 열매를 나누는 선택들을 늘려가고 싶다.
모두가 승자가 되기 위해 게임을 하는 곳은 살아서 겪는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