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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Mar 03. 2021

살고 싶다는 농담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자

사랑했다고 착각했던 일을 관두면서

무슨 사랑의 열병처럼 

온몸으로 앓았다.


고향이 서울도 아닌 나는 

숨만 겨우 쉬며 

줄어가는 통장 잔고나 헤아리면서 눈을 떴다. 

무의미의 하루가 

버거웠다.


어떻게든 

이 지루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머리를 자르고

식물을 키우고

이것저것 배웠다.


사는 곳을 바꾸고 싶어 갖은 애를 쓰다가

나의 경제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히자 

급격히 불안해졌다.


계획했던 일들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상대의 무능력을 마음속으로 탓한다.

그게 개인의 잘못을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어떻게든 남 탓을 하고 싶었다.


일하느라 신경을 못 써주는 그에게

온갖 삶의 무게를 전가하며

나의 외로움은 

너의 탓이라고 말한다.


너를 놓으면 

내가 여기 살 이유가 없다고,

나도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다고,

온갖 감정의 불안들을 떠 넘긴다.


그리고, 

후회한다. 


연인 사이에 

자살하고 싶다는 말 앞에 

이길 문장은 없다. 


살려고 발버둥 쳤던 나는 

삶을 함께 하기로 한 이에게 

온갖 무리한 요구들을 했다.


내가 바꿨으니, 

너도 바뀌어야 한다고 우악스럽게 몰아붙였다.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지금까지의 그의 삶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모든 원인이 그에게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힘들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의 모든 바닥까지 끄집어내어 

죽고 싶지 않아 그랬다고 말한다.


불행의 크기를 타투며

관계에서 우의를 기어이 차지하려들었다. 


온갖 못된 말을 

갈고 갈아서 

상처를 준다.


가시를 드러내고 

시험하려 든다.


이런 날 끌어안지 못하면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냐.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날 사랑하지 않았다.

이런 망가진 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그의 말도 믿지 못한다.


내 존재의 불안함이 그의 탓이 아닌데 

이 모든 게 그의 잘못인양 비난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한 그는

자신이 아직 철이 덜 들었다며

더 잘할게라고 말한다.


원인이 그에게 있는 게 아니었으니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못난 내 모습에 더 마음이 뭉개졌다.


무의미의 늪에서 영원히 갇혀

서서히 잊히는 상상 따위를 하며

급격한 허무주의로 빠져든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 이상

그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수없이 흔들렸다.


나의 이 불안을 그의 탓으로 치부해버리고

외면해버리고 싶었다.


나는 오로지 나 스스로 꼿꼿이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니, 나 스스로 삶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이대로는 주변의 모든 걸 망가뜨려버릴 것 만 같다.


몇 년 전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내게 위로가 되는 건 타인의 불행뿐"이라는 문장이 


불쾌했다. 


내가 좀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태도가 싫었고,

나도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에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아직 망하려면 멀었다"는 문장을 읽고 오열했다. 


부끄럽게도 위로받았고, 

양귀자의 글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 그 문장이 내게 들어오기엔 

내가 나를 너무 잘 몰랐다.


스스로 좀 더 근사한 사람이길 바랬다. 


누가 세운 기준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견고해진 허구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 벽은 잘 무너지지 않았고, 

억눌렸던 본심이 이상한 형태로 툭툭- 튀어나와

가장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내 조급함은 이 정도의 바닥에서도 온갖 몸살을 부렸다. 

아직 망하려면 한참 멀었다.

얼마나 더 대차게 망해야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별다를 것 없는 시시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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