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Feb 15. 2021

도대체 왜 우는 거니?

고장 난 수도꼭지

나는 얼마 전까지 다 큰 성인이 

방 안에서 혼자서 운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제외하자.  


울었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으레 그 상황에 맞는 말을 건네며 

공감한다는 고갯짓을 

그동안 배운 사회생활에 맞게 

적절히 해왔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결코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적당히 공감하는 척하고 흘려보낸 그 모든 순간에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지 

뒤늦게 깨닫고 너무 미안했다. 


그때로 돌어가 내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


어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나도 하지 않은 자존감 높이는 법에 대해 말하며

아픈 마음을 무참히 짓밟았다.


내가 내 결점에 너그럽지 못하고

한 방울의 눈물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만큼

남들의 눈물에도 너그럽지 못했다.


그 말의 무게와 그들이 들어간 심연의 깊이,

그 걸 내 앞에 꺼내놓을 때의 용기까지 고려한 끄덕임이 아니었다. 


어느 대통령의 고백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대’의 말을 빌려 말하는 게

게운치 않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몇 달간 내 내면을 후벼 파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로 지새우다 보니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나는 늘 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람이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면을 돌아보며 보내는 

시간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불우하게 삶을 버티고 있었다.


버티는 삶을 끝내겠다 마음을 먹으니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살면서 못 흘린 눈물들이 한꺼번에 다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책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누가 웃을 때마저도  

그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울었다.


여기서 그치면 좋았을 텐데..

모든 과거를 헤집고 들어가 묵은 때를 털어내면서

자기 연민과 혐오의 늪에 종종 빠져버려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기 일 수였다.


붉어진 눈을 걱정하는 이에게

잠을 잘 못 잤다고 둘러댔다.


글을 쓰면서도 울었고

그 쓴 글을 읽으면서도 울었고

댓글을 달아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울었다.


살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SNS에 남기는 글을 자기 검열을 했었다.

혹시나 내가 감독이 되었을 때

미숙하게 남긴 내 디지털 흔적이 내 발목을 잡을까 봐

그 흔한 좋아요 버튼에도 야박했다.


그런 나에게 

감사하게도 관심을 가져주고 댓글을 남겨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남긴 그 모든 것들은 좋든 싫든 결국은 나의 일부일 텐데

그것들을 하나씩 부정하다 보니 

내 모든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평가 받든 그냥 인정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고 야박하게 살았을까.


시크와 쿨하다는 프레임에 갇혀서 

표현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막연히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일이 하고 싶었다


티브이에서 보는 유명한 사람들이

좋은 일들을 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했나 싶기도 하다


그냥 오늘 나를 움직였던 글과 스쳐갔던 이미지에 

공감하는 걸로도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좋은 일의 개념을 너무 거창한 무엇인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악플이 사람을 죽이게도 하는 것처럼

나의 오늘의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도도하게 굴지 말고 맘껏 표현하며 살자. 


제대로 감동하고 

그때그때 감사하고

바로바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자.

이전 23화 나는 내가 정말 피곤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