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살자
주변인들은 나의 행동들을 보고 자존감이 높다는 말들을 했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단어에 관심이 많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 마저 잘하고 싶어서 애를 썼다.
때마다 여행을 다녔고, 요리도 했으며, 매일 같이 청소를 하고 운동도 했다.
영화 한 편을 끝내고 돌아오면 끝을 모르는 무력감에 이 모든 과정을 열심히 반복했다.
당장엔 기분이 나아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울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끝없이 달리는 열차 위에서 내려 올 용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 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기보단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약하다 생각했다.
나의 약점을 보여주기 싫어 늘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써왔고,
내 속을 보이는 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문제 해결을 뒤로하고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부했다.
인간이 어디 그렇게 완벽 할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니, 남들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완벽주의에 빠진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다.
겉으론 강해 보이는 나였기에 주변 친구들의 고민을 많이 들었다.
그들에게 어설프게 조언들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나도 그렇게 살지 못했고,
애쓰면서도 버거웠다.
어쩌면 그들에게 건넨 말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남들에겐 한 없이 괜찮다, 있는 너의 모습 그대로 좋다고 말해 놓고,
정작 나에겐 야박하게 굴었다.
아마도 그런 내 모습을 그들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덧 공감 부적격자가 되어,
'소시오패스' 감별법을 보며 그들이 날 떠올릴까 봐 무서워졌다.
어릴 적 아빠에게 들은 헛똑똑이라는 평가는 학창 시절의 나를 달려 가게 만들었다.
매 순간이 끊임없는 증명의 과정이었지만,
정작 그가 내 성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급격히 허무해졌다.
갈 곳을 잃은 미움을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멈추는 법을 몰랐다.
실체 없는 미움은 더 큰 올가미가 되어
누구에게 맞춰야 하는지도 모르고 애를 썼다.
이젠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할 때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며,
때론 게으르고, 실수도 많고,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젠 진짜 누군가의 평가로 휘둘리는 삶에 나를 맡길게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근본부터 바꾸고 싶다.
요즘 매일이 바쁘다.
새로 배우는 것들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
삶의 변화와 그 순간조차도 오롯이 느끼며 살고 싶다.
변화의 욕구마저도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아... 나는 정말 내가 피곤하다.
제발 좀 쉬엄쉬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