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보는 바보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집요하게 한 우물만 파고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내가 그랬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는 책과 영화만 보는 바보였다.
왓챠에서 인정하는 상위 0.01%에 꼽히는 '베테랑 영화인'이었지만
다양한 걸 접해야 한다는 시류를 느끼고 내가 한 일은
내 취향과 맞지 않거나 지겹다고 보지 않았던 영화와 책을 보는 거였다.
그것도 고전 문학과 흑백 무성 영화를 말이다.
<국가의 탄생>은 여전히 못 봐주겠고,
<군주론>는 권위주의의 끝판왕이었다.
한 사람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꾸준한 파고듬이 있어야 하겠지만
10년을 한 분야에서 일한 나에게 필요한 건 영화의 역사나 이야기의 원형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었다.
숨기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아 나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쓰는 글들은 어딘지 허황되거나,
섣부른 일반화로 인해 쉽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것들이었다.
내 목소리를 발견하는 걸 뒤로 한채 여전히 남들이 쌓아 올린 행적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다.
그게 안전해 보였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권위에 기대고 싶었다.
정작 부족했던 건 자신에 대한 무지였지만,
불안한 마음에 엉뚱한 곳에서 헤매면서 답을 찾았다.
온갖 줄임말을 못 알아들을 때면
오히려 미디어의 홍수에서 벗어나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 속에서 파도도 타며 신나게 즐길 때
고인물에서 고고하게 떠 있으면 어느 날 누가 알아봐 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냥 저 유튜브 안 봐요, 인스타 안 해요, 인터넷 뉴스 안 봐요.
그렇게 신문명의 홍수에 힘껏 두 눈과 두 귀를 닫고 살았다.
10년 전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보고, 내 상황의 불합리함에 안도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엄청나게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트렌트를 읽었을 뿐 무조건 자신을 따르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내놓은 '2021 트렌드 코리아'를 보며 격하게 흔들렸다.
내가 우직하게 한 길만 한눈팔지 않고 가는 사이에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고 말한다.
간혹 한 집단이나 사람에게 수년간 억압을 당하는 누군가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 있지? 그랬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집에 티브이가 없기도 했지만
인터넷 뉴스마저 안 보게 된 계기는 세월호 사건이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을 하면서 더 멀리했다.
굳이 찾아보지 않으니 대중매체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그게 더 지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난 뭘 위해서 대학생 때도 보지 않았던 흑백영화와 고전작품을 꾸역꾸역 보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그걸 내 시선을 간직한 채 보았다면 메타분석의 도구가 되었겠지만,
'영화사를 바꾼 영화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서울대학교 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
과 같은 타이틀 아래 있으니, 제대로 된 비평의지를 발휘하지도 못했다.
모든 트렌드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어떨 땐 그냥 누군가 다 정해줬으면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 틈을 공략해서 눈 밝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구독 서비스 또한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 대신 무언가를 결정했을 때,
나는 나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는 것이다.
그러니 수 없이 이유도 모른 채 흔들리고 아파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이제는 나를 드러내고, 나만의 시각을 발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