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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ul 18. 2021

자존심과 자기혐오

일자리 제안에 또다시 흔들리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느낀 곤 

아직도 내 안에 인지 못한 문제가 있음을 감지했다.

그동안 나를 바꿔보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냥 나란 인간의 시시함만 더 잘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가장 쉬울 것 같았던 내 마음을 달리하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무능감을 느끼며 더 깊은 자기혐오에 빠졌다.  


아, 자기혐오나 하는 그 모습조차 마음에 안 들었다.  


그동안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영화일을 계속해왔던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늘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자기 효능감을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영화일 특성상 습관적으로 백수 생활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무능한 나와 그런 나를 미워하게 될 불안을 해소하기에 급급해 

근본적인 내면의 성찰이나 자기 돌봄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새로운 기술은 발전을 시키려면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하다.  

급한 성격과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빠르게 배웠지만 

그곳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노력하며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해나가며 쌓아가는 시간의 무게감은 알지 못했다. 


10년 경력의 영화일은 나의 무능감을 잊고

가장 빠르게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선 정말 돌아가선 안 되는 곳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 일자리 제안의 불합리를 인식하고 그걸 적절하게 거절하는 건 옳았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애는 인정을 목말라했고,

그 일을 자기 발로 차면서도 한 없이 자존감이 추락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자기 확신마저 무너졌다. 


그러다 갑자기 자존심이 상해서 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 이 정도인데 이런 페이 받고는 못하지”

“능력자를 구한다면서 구인하는 태도가 왜 그 모양이지?"

"내가 언제까지 입봉 감독 뒤치다꺼리나 해야 돼?"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떠올랐던 생각들을 돌아보면 

내가 생각하는 내 경력이나 능력에 비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해서 마음이 상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결국은 일자리 제안의 불합리를 떠나서 

스스로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우와, 진짜 자존심이 문제였다고? 


그동안 글을 쓰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건 더럽게 힘든 일이다.  

한 번 내려놓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에 현타가 왔다. 

적당한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지만, 

자기 합리화라는 그 말 자체도 혐오했기에 내 마음이 갈 곳이 없었다. 

자존심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과거를 뜯어보다 보니 

자기혐오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견뎌야 된다는 생각도 했고,

나아지는 과정이니 잘하고 있다고도 여겨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날은 조금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대우에 내 가치가 흔들릴 필요가 없지만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선 힘들 일이었다.

그러니 크고 작든 매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상처 주는 건 결국 내 의지에 달려있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문제를 인식했으니 

자존심을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자존감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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