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나비 사이에서

by 김기수

창가에 걸린 시계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제 할 일을 한다.

초침은 숨을 고르듯 한 칸씩 전진하고, 분침은 그 뒤를 묵묵히 따른다.

나는 그 아래에서 가만히 앉아 시간을 바라본다.

시간은 늘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어느 날, 시계 위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잠시 머물다 갈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얇은 날개는 빛을 머금고 있었고, 초침의 떨림에 맞춰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시간 위에 감정을 얹어두는 것처럼.

시계는 정확하고, 나비는 가볍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정확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과,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나는 늘 중간쯤에서 망설인다.

어릴 적 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믿었다.

방과 후의 오후는 끝이 없을 것처럼 길었고,

여름방학은 영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달리기 시작했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빨라졌고, 멈추라 말할수록 더 멀어졌다.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위로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간다.

어쩌면 그것이 시간의 자비인지도 모른다.

머물지 않기 때문에 상처도 언젠가는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나비는 다르다.

나비는 머문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짧음 속에 전부를 건다.

꽃 위에 앉을 때도, 바람을 탈 때도,

나비는 늘 지금이라는 순간을 온몸으로 산다.

나는 그 나비를 보며 생각했다

혹시 나는 시간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흘러감이 두려워 오늘을 움켜쥐고,

지나감을 아쉬워 내일을 미루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시계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고 있니?”

그리고 나비는 속삭인다.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초침의 소리를 듣는다.

째깍, 째깍.

그 소리는 심장 박동과 닮아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 그러나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

어쩌면 삶은 시계와 나비의 공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걷는다.

그러나 동시에 바람에 흔들리고,

예기치 않은 빛에 마음을 빼앗긴다.

시간은 나를 앞으로 끌고 가고,

감정은 나를 현재에 붙들어 둔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배워간다.

나비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시 날개를 접었다가, 이내 창밖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시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위에 잠시 내려앉을 용기를 배우고 있다.

오늘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르다.

초침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는다.

시계가 나를 재촉해도,

나는 가끔 멈춰 서서 하늘을 본다.


나비가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나는 내 안에 작은 날개를 접어 둔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시계탑 아래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나비의 여행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간을 소유할 수 없지만,

순간은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한다.

흘러가는 것을 미워하지 않겠다고.

머물 수 없는 것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숨 쉬는 나를 사랑하겠다고.

시계, 나비 그리고 나.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빛을 나눈다.

시간은 계속 흐르겠지만,

나는 그 위에 내려앉는 법을 배웠다.

아주 잠시라도, 온전히.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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