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바늘 끝에 머문 나비

— 예순의 문턱에서 시간을 다시 읽다 —

by 김기수



창밖의 풍경은 어제와 닮았지만, 어제는 아닙니다.

빛은 조금 더 옅어졌고, 바람은 어딘가 모르게 느려졌습니다.

나는 낡은 소파에 앉아 그 미세한 차이를 바라봅니다.

젊은 날에는 몰랐던 결들이 이제는 손끝에 만져집니다.

지나온 시간의 등고선을 더듬듯, 기억의 능선을 천천히 오릅니다.

내 마음속에는 늘 하나의 시계가 있습니다.

태엽 소리가 유난히 큰, 커다란 시계입니다.

그 시계는 가차 없이 ‘오늘’이라는 조각을 잘라냅니다.

젊음도, 사랑도, 후회도 예외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잘려 나간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조각들은 쌓여 나를 이루는 나이테가 되었음을.

어떤 날은 브릿팝의 젖은 기타 선율처럼

우울이 거실을 가득 채웁니다.

이유를 묻지 못한 채 마음이 젖어 드는 날,

무거운 외투를 벗지 못하고 하루를 끌고 가는 날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날을 실패라 불렀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우울이 나를 더 깊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아픔에 더 오래 귀 기울이게 된 것도,

누군가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게 된 것도,

어쩌면 내가 먼저 흔들려 보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결코 무의미한 침전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어둠이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트로트의 경쾌한 엇박자처럼

“얼쑤” 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삶의 비탈길을 웃으며 내려가고 싶어집니다.

넘어질까 두려워 움츠리던 날들보다

차라리 크게 웃어버리는 오늘이 더 용기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득 상상합니다.

파리의 어느 노천카페,

낯선 햇살 아래 놓인 이름 모를 꽃처럼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성과도, 비교도, 증명도 없이

그저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하루.

예순의 문턱에 서니 비로소

그 단순한 소망이 가장 어렵고도 귀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습니다.

나의 예순 고개를 지나 또 다른 시간을 가리키겠지요.

그러나 그 바늘 끝에 위태롭게 앉아 있던 나비는

아직 날개를 접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나를 자를수록,

내 영혼은 더 멀리 날아오를 준비를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나를 읽습니다.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문장 사이에서,

기다림과 그리움이 쉼표가 되는 행간에서,

비로소 나라는 한 편의 시가 완성되어감을 느낍니다.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날개 색이 남아 있기에

나는 나의 우울조차 사랑합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이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내일의 첫 문장을 다시 쓸 힘이 내 안에 남아 있다면,

시계의 바늘 끝에 앉은 나비는

결국 가장 눈부신 찰나를 향해 날아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날갯짓을 믿으며 또 하루를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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